♤작년에 설교를 듣고서 끄적여놓았던 메모를 발견하고 다시 정리해보았습니다. 어떤 마음의 불편함과 괴로움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건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됨을 향한 동인으로 작동된다면 결코 부정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이럴 때 고난은 분명히 유익이 된다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지식과 관계 중에 어떤걸 택할 것인가 묻습니다. 관계를 깨뜨리는 지식은 결코 온당치 않다는 것과 삶을 담보하지 않는 관념적인 지식에 대한 불신을 표현하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바른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 관계 만큼 비정상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없다고 성경은 강력하게 증언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지만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열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씀으로써,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롬10:2-3, 새번역]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인에게 당연하고 필수적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그 지식이 바르게 형성되었는지를 늘 살펴보고 점검하는 것이 이 말씀의 홍수 시대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화를 찾듯 그것을 찾아라.
그렇게 하면, 너는 주님을 경외하는 길을 깨달을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터득할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잠2:4-5, 새번역]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여호와)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충만)하기 때문이다.
[사11:9, 새번역]
이스라엘 자손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주님께서 이 땅의 주민들과 변론(논쟁)하신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호4:1, 새번역]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내가 이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 가운데서 더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고전15:34, 새번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고후10:5, 새번역]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고상)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빌3:8, 새번역]
우리가 진리에 대한 (진리를 아는) 지식을 얻은 뒤에도 짐짓 죄를 짓고 있으면, 속죄의 제사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히10:26, 새번역]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 (그를 아는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십시오. 이제도 영원한 날까지도 영광이 주님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벧후3:18, 새번역]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17:3, 새번역]
♤우리가 살다보면 사랑을 따라 대할 것인가, 진리를 따라 대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고민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당시의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그리스인에게는 어리석은 일(고전1:23)처럼 보였겠지만, 정의와 사랑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가지 요청을 단 한번에 해결하는 하나님의 지혜였음을 우리 모두는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말씀의 적용은 쉽지 않습니다. 뭔가를 꼭 말하고 행동해야만 할 때 그것이 남을 향한 비판을 넘어 비난으로 비춰질까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동안 좋았던 관계에 금이 가게 하는 것이 아닐지에 대한 염려가 생깁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좇아 사랑하고 관용하는 기독교 정신에 위배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결국 우리의 입을 꾹 닫게 만듭니다.
성경에는 여러 상충되는 표현들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전제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고 사는 것은 참된 것을 향한 예수 따름이들의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몸부림이요, 하나님의 온전한 진리의 근사치를 향한 신자들 삶의 당연한 분투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엡4:15, 새번역]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선의 본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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