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라입니다
(마20:1~6) 2023.10.29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마20:1, 새번역)
포도원의 주인은 이른 아침, 3시, 6시, 9시, 11시에 품꾼들을 불러 일을 시킵니다. (현재시각 아침 6시, 9시, 12시, 3시, 5시) 그리고 일한 시간과 무관하게 한 데나리온의 동일한 품삯을 줍니다. 주인은 불평하는 품꾼들에게 내 뜻대로 하는 일이니 계약한 품삯을 받고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마20:16, 새번역)
바로 앞장인 19장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른 우리가 무엇을 보상으로 받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세상에서 인자가 자기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라온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고,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식이나 땅을 버린 사람은, 백 배나 받을 것이요, 또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을 것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러나, 첫째가 된 사람들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된 사람들이 첫째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마19:30, 새번역)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비유를 계속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의 마태복음식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 많은 수고, 공로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의 선의에 의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 특출난 사람만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어느 때에도 주인이 청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못된 공로의식과 비교의식에 사로잡힙니다. 내가 이렇게 많이 했는데~, 내가 남보다 더 했는데~ 더위를 참으면서 힘들게 일했는데 왜 몰라주는가? 남보다 더 긴 시간을 수고했는데 왜 그것을 인정하고 보상해주지 않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서 말하는 공정의 잣대와는 결이 다른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계산법이 적용되는 곳이 전혀 아니며 놀라운 은혜의 방식으로 주어지며, 하나님 나라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가치를 가진 곳이라는 것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어떤 수고의 행위로 더 빨리 더 많이 얻어지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의로 그 기쁘신 뜻대로 은혜로 똑같은 무게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의 선물을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온전히 누릴지에 대한 내용을 열심히 궁리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엡2:8, 새번역)
설교내용 중에,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를 함께 기뻐해줘야 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떤 은혜를 말하는지 조금 불분명하지만, 문맥의 뉘앙스를 따르면 어떤 사람이 처한 현실의 성공이나 풍족함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잘되고 성공하고 부유해진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속하니 시기나 시샘을 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기뻐해줘야 한다는 의미인 것 깉습니다.
이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이해에 기반한 설명이 아닐까 합니다. (거의 관용적으로 사용하시는) 옛사람의 죄악된 본성이 여전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세상에 대한 긍정하고는 거리가 멀고, 영혼 구원과 내세 천국에 대한 강조 역시 사람과 세상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반대로 세상과 삶에 대한 이해와 적용은 아무런 의심과 주의없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비록 믿음을 가졌다 하지만 언제나 잘못된 길에 들어 실족하고 실수할 가능성이 많은 우리들입니다. 그 삶의 결과에 대한 동기와 방법들이 언제나 선할까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얻었을 때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베푸시는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아주 이상합니다.
지금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셈법으로 작동되는 곳이 아니라는 기본 전제를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내용입니다. 공정을 논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고생한 품꾼의 불만은 깊이 이해가 됩니다) 세상에서 얻는 모든 복이 불의한 욕망과는 전혀 무관하고, 신자들이 누리는 좋은 것들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의 결과물이라고 단정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품꾼으로 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를 설명하십니다.
먼저 온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와는 무관합니다. 나중에 왔지만 그 부르심에 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먼저 온 순서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응하느냐는 태도는 무척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22장의 혼인잔치 비유가 이를 보여줍니다.
혼인잔치에 청함 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자 길거리에서 누구라도 혼인잔치에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걸맞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남을 당합니다. 그때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는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우리들이 어떻게 응답해야되는지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줍니다.
더 이해를 확장해 보면, 믿음을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우는 먼저 된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켜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끄럽게도 나중 된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이 땅에서의 많은 수고와 희생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삯을 받아야 합당할까요?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눅17:10,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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