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성품(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
(베드로후서 1:1-4) 2023.7.30.주일
(본문은 1~4절이지만 문맥을 파악하기 위해 1~11절까지, 새롭게 읽기 위해 새번역 성경으로 읽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인 시므온 베드로가,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의 믿음과 같은 귀한 믿음을 받은 이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4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6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7 경건에 신도간의 우애를 더하고, 신도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십시오.
8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9 그러나 이런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근시안이거나 앞을 못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더욱 더 힘써서,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은 것과 택하심을 받은 것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1 또한 여러분은,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
(벧후1:2-11, 새번역)
[주일설교 요약]
믿음이란 하나님 주권과 은혜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을 말한다.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은 죄로 그 형상이 크게 훼손되고 망가진.사람 안에 다시금 그 영광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함이다..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
깨지고 이지러진 하나님 형상을 사람이 스스로 고쳐 온전케 할 수 없기에 하나님 아들이 세상에 오셨고, 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회복의 길을 내셨다.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의 십자가 복음 앞에 엎드리고, 그의 부활의 의와 능력을 덧입는 것뿐이다.
이 믿음으로 어둠의 형상을 벗어내며 하나님 귀하고 온전한 성품을 담아가는 것이다. 그 믿음으로 사는 과정이지 완벽한 성취를 이루는게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친히 사람 형상을 입고 우리 죄 짐을 자신 사랑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자기 온전함이나 도덕적 성취에 기대는 게 아니고 이미 하나님 성품에 참여케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또한 주의 영이 친히 이끄실 것을 기대하며 "믿음으로"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결론: 하나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믿음으로 되고 자신이 이루는 온전함에 의하지 않는다. 하나님 성품에 참여하는 구체적인 삶은 '감사'와 '기대' 이다.
**) 믿음으로의 삶, 감사와 기대의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체성을 가지게 될 지 저로서는 정말 모르겠네요. 제게는 이런 뉘앙스를 진하게 풍깁니다.
믿음으로의 삶은 '하나님께서 언제가는 이루실 것이니 현재를 만족하며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죄성으로부터오는 악함과 약함을 인정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습니다.
감사의 삶은 '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신다니 우리 능력에 맞지 않는 그런 말씀이라도 너무 감사합니다', 기대의 삶은 '그럼에도 주의 영이 친히 인도하실 것을 막연하지만 기대해보갰습니다' 로 들립니다. 참 사변적이고 관념적으로 느껴지는건 저만의 생각인지, 이렇게 믿음과 감사와 기대를 입으로만 긍정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인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새롭게 묵상하기>>
해당 본문에는 두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1) 반복되는 말
2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3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8절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갖추어지고, 또 넉넉해지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게으르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알 때 은혜와 평강이 풍성히 임합니다, 생명과 경건에 이르는 모든 것을 권능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갖추어지고 넉넉해집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광과 덕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완전한 생명과 경건을 누리게 하신다는 귀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약속들은 우리가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또한 이 성품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합니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17:3, 새번역)
2) 하나님의 성품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믿음에 덕을 지식을 절제를 인내를 경건을 신도간의 우애를 사랑을 더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구체적인 성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세상에서 사사로운 욕망을 추구하는 것과 반대의 것들입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온 성령의 열매를 떠올리게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희락)과 화평과 인내(오래참음)와 친절(자비)과 선함(양선)과 신실(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내적이며 인격적이며 관계적인 요소들입니다.
또한 이것들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자비하시며 신실하신 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과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성령의 열매들은 성령의 은사나 능력과 다릅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꼭 필요한 상황에서 어떤 이를 통해 내려주시는 한시적인 것이며, 성령의 열매는 각 사람에게 맺어지는 점진적이며 영구적인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사람의 성품과 인격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반면 성령의 열매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게 합니다. 인격의 성숙과 성품의 변화가 있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도를 통해 여전히 성령의 능력과 은사 받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성령의 내주는 귀신 쫓는 능력과 신비한 영적체험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 확증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있으며 이미 영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따라가고 추구하는 것과 동의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격적인 성품이 우리 안에서 나타날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부지런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앞을 못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의 십자가 구속을 통하여 자신의 옛 죄가 사해졌음을 알게 된 사람은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며, 이를 통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를 똑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자들임을 분명히 자각할 때, 사탄과 악한 영들과 귀신들의 유혹과 궤계와 죄의 덫에도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출 것입니다.
구원얻을 믿음이 그리스도를 고백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선물로서 은혜로서, 다시 말해 수동적이며 피동적으로 주어졌지만, 믿음은 거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해서 그분의 백성으로, 예수의 제자도를 따르는 삶을 이 땅 각자의 삶터에서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선택하여 영광스럽고 덕스럽게 살아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성도인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무기력한 음울함이 배경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서 각자 믿음의 풍성한 내용과 선을 향한 성실한 발걸음이 어우러지고 채워지면서 그렇게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아름다운 끝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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