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되새김

만물을 다스리는 자

강가딘777 2023. 8. 13. 11:48

만물을 다스리는 자(시편 8:1-9)
2023.8.6.

주님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시8:6,새번역)

(설교요약)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과 우주앞에 인간은 미약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고 영광과 존귀한 존재로 만물을 발아래 두고 다스리게 하셨다. 인간은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받고 대리통치자로서 사명을 받았다.
죄로 비틀어진 영혼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어그러지고 악한 통치 욕망이 있다.이것과 싸우면서 서로 협력하며 이 세상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실현하는 존귀한 사명자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자의 삶이다.


<새롭게 읽기>

설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은 미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주고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통치자의 역할을 맡기셨다, 세상의 어그러진 통치욕망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실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본문과 설교를 통해 떠오른 질문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다스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가?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이미와 아직의 경계에서 지금 여기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꿈꾸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고 모든 삶의 부분 부분마다 성경을 통해 일러주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원리들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는 능력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다스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됩니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발아래 아래 두고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 너무나 미약한 인간에게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사람이 만물을 어떻게 다스리게 하신 것일까 입니다.

성경에 나온 만물을 다스림과 연관된 내용들을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창2:19)
-예수님께서 청지기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도 좋은 힌트가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청지기겠느냐? 주인이 그에게 자기 종들을 맡기고, 제 때에 양식을 내주라고 시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고 있으면, 그 종은 복이 있다.
(눅12:42-43, 새번역)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청지기 하나를 두었다. 그는 이 청지기가 자기 재산을 낭비한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서, (눅16:1, 새번역)

-결정적으로 예수님께서 다스림의 원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마20:20~28).(막10:35~45)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2-45)

일반적으로 세상의 다스리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막10:42-45, 새번역)

성경적으로 보면, 다스리는 자는 처음으로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큰 명예를 가진 자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자연이라는 하나님의 동산을 맡은 청지기입니다. 그는 믿음직하고 지혜롭게 모든 만물을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하며 함부로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다스리는 자는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권세를 부리지만, 하나님 나라의 다스리는자는 크고 으뜸이 되려 말고 오히려 종과 깉은 낮은 마음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다스림의 원리입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자를 이야기하면서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생략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다스림은 하나님이 사람을 다스리고,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연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시점부터 사람에게 위임하신 중대한 사역입니다.

만물을 발아래 두고 다스리는 권한을 주신 것,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라는 명령은 자연을 마음대로 남용하고 오용해도 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요즘 자연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전 세계으로 이상기온이 빈번합니다. 폭우로 홍수와 산사태, 폭염과 산불, 지진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기온이 상승해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 내리면서 많은 이상기온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생태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평안하다 하며 아무 걱정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입니다.

자연이 파괴되고 해가 갈수록 이상기온이 빈번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자연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해 무차별적인 개발과 함께 화석연료의 광범위한 대량 사용이 원인이 아닙니까? 경제논리를 앞세워 무분별한 자연의 훼손에도 면죄부를 주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늦게나마 개발전 환경평가같은 법적보호장치를 만들고, 전세계적으로 화석연료를 줄이는 방안을 진행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상으로 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말도 들립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롬8:18-23, 새번역)

사실 모든 피조물도 구원을 고대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반역으로 인한 죄악의 결과로 자연도 함께 창조의 질서에 어긋나게 되었다는 신앙적인 설명입니다. 실상으로도 인간의 올바른 다스림이 없음으로 인해 자연이 중병에 걸려 신음하면서 몸살을 않는 중입니다. 하물며 자연의 역습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수년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도 동물의 보금자리까지 침범한 인간의 욕심이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연의 통치를 위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만물을 다스리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하나 하나 이름을 지어주듯 잘 살펴보기를 원하십니다. 살림을 맡은 청지기처럼 믿음직스럽고 지혜롭게 자연을 돌보기를 원하십니다. 자연을 맘껏 훼손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기지 읺고 오히려 많은 유익과 좋은 것을 가져다 주는 고마운 존재로서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 관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다스림의 원리가  자연만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자연을 종의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자로서 인간은 이 땅의 모든 것에 책임이 있습니다. 다스리는 권리만 만끽하면 결국 자연은 파괴되고 훼손됩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다스리는자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현실을 지내는 신앙인으로서 영혼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에만 그치지 말고, 우리가 숨쉬며 보대끼며 살아가는 이 땅의 현실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눈길을 돌리도록 성도들이 서로 독려하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은 실제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고찰은 매일성경을 편찬하는 성서유니온의 묵상과 설교 (2020년 1,2월) 창세기 1-36장 중에서 발췌한 내용을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이 다음 포스트에 요약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