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

설교는 성도에게 어떤 의미인가?

강가딘777 2023. 8. 28. 10:28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의 가장 중요한 행위입니다. 예배의 모든 부분이 귀하지만 그 중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의미에서 특별합니다. 어쩌면 성도들 중 상당수가 일주일 동안 처음으로 성경말씀을 접하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예전에는 매일성경이라는 보조수단으로 열심히 성경을 가까이 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시들해지는 것 같습니다.

설교에는 목회자의 개성이 많이 반영됩니다. 개인적인 성향과 목회방향과 사역의 종류에 따라 설교의 내용이 천양지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년에 걸쳐 같은 목회자의 설교를 듣는 교회의 성도들은 단방향적인 내용을 거듭해서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하게는 동어반복적인 내용을 계속 듣다보면 그 말씀에 별다른 반향이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저 의무적인 예배행위로서 만족하는 것입니다. 매일 먹는 집밥이 맛으로 먹기보다는 항상 먹어왔기 때문에 먹는다는 비유로 그 상황을 변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힐 것 깉습니다.

설교가 중요한 이유는 그 설교가 곧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설교의 말씀은 곧 하나님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는 제 일의 통로로 여깁니다.

설교의 종류와 내용은 참 다양합니다.  설교는 기본적으로 성경의 본문을 기초로 하여 구성되고 특정한 목적에 의해 완성되어 성도들에게 전해집니다.  몇가지 이유로 해당 성경 본문이 설교의 내용과 그다지 관련없이 보이는 설교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설교자가 전하려는 주제에 집중해서 내용을 구성하다보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주로 하다보면 여러 문제들이 생깁니다. 본문은 흐린 배경이 되고 설교자의 사적 견해들이 설교 내용의 주가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들에 반강제적으로 동의를 구하면서 그것이 공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본인이 세운 경험과 지식과 신념을 설교의 기초로 삼고선, 더 중요한 성경의 근거와 기준을 더불어 충분히 제시하는 것을 소홀히 합니다. 이는 분명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아무일 없듯이 지나가는 건 왜 일일까요? 모르거나 무뎌졌거나 아니면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가 종교들도 성경의 내용을 근거로 온갖 잘못된 주장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바르게 읽는 것이 요즘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을 바르게 읽는 것인가 하는 까다로운 문제가 남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성경의 내용을 어떤 방향과 목적과 지침으로 읽느냐에 따라 기독교 신앙의 스탠스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본질엔 일치, 비본질엔 관용, 모든 일에는 사랑을!' 이라는 말이 나온 거겠죠.

오늘 말하고 싶은 바는, 설교의 근거가 되는 본문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양한 방식의 설교를 하는 것은 설교자 개인의 자유이지만, 매번 일방향적인 설교 형식을 고수하면서 성경본문을 배경화시켜버리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관행에 대한 우려를 말하고자 합니다.

무엇이 걱정거리인가?  첫번째,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첫 독자에게 전해졌던 본문의 내용을 형성하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본래의 의미를 다루는 주해가 생략된다는 뜻입니다. 이러면 하나님께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행하신 일과 하신 말씀과 그 백성들의 반응을 모르게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에 기반한다 하지만 원 뜻과는 거리가 먼 (자의적) 해석으로 대체됩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읽기로  합당하고 일리있는 해석을 한다고 하지만, 본문의 역사성이 생략된 결과물이라면 이 본문들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 성경본문을 문맥에 따라 보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여러 본문에 이어지는 문맥을 따라 내용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거대한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본문들이 모여 작은 이야기들을 구성합니다. 문맥을 따르지 않고 특정 단어나 구절로만 설교를 구성할 때 생기는 문제점은 그 단어나 구절이 본래 어떤 의미임을 알 수 없다는 것 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하나의 단어나 구절이 역사성과 문맥을 초월하여 유일하고 강력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섭리의 완결판입니다. 그 복음의 리트머스로 모든 성경을 다시 볼 때 불완전하고 임시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한 진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설교들에서 발견되는 현상인데, 하나의 단어, 하나의 구절을 증심으로 설교하는 것입니다. 영감어린 단어와 구절에 쏙 빠져서 그것을 소재로 설교를 플어가는 방법입니다. 그 본문에 특정한 단어나 구절이 있기때문에 본문이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본문의 문맥에 따른 이해가 되지 않다 보니 역시 자의적 해석이 나오고 자기계발적 내용과 도덕적 교훈에 그칩니다.  이 설교방식의  문제는 그 성경으로 인해 하나님의 행하심과 하신 말씀과 그 백성들의 반응과 결과에 대해 침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본문에 나온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하신 말씀에 대한 심각한 곡해가 일어납니다. 성도들이 본문을 잘못 이해하게 됨으로 신앙생활과 영적건강을 지극히 해롭게 합니다.

<본문말씀의 구체적 내용과 의미>을 역사성을 가지고 문맥을 따라 다루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말씀, 말씀하지만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많은 이들이 십자가 복음이라는 기독교의 큰 교리에 비춰 말하면 다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신앙의 출발입니다. 우리는 온 인생을 통해 지난한 신앙의 과정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성경본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올바르고 성실한 주해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현재에 합당하고 적절하며 올바른 해석이 나오게 되며,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한 뜻을 분별하여 온 삶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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