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13:1)
성경말씀은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나온 것이 어떤 권세든 복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만든 질서는 권위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루어지는 질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그 질서에 따라 살아갈 때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우며 생명이 넘치는 것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인간이 그것을 거부한다면 온갖 무질서와 끝없는 혼란의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류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권위적'이라는 말은 요즘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선 왠지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권위적인 아버지, 권위적인 선생님, 권위적인 상사, 권위적인 대통령.....
'권세,권능,영향력,권한,탁월,위엄,존엄,장중,주권,명성,위세' 같은 본래의 의미를 떠나
'억압하는 힘'이나 '자유를 박탈하는 세력' 또는 '고지식하고 닫혀있고 굳어버린 상태'를 나타낼 때 더 많이 사용된다면
그 의미가 많이도 퇴색했네요.^^
그 이유를 역사속에서 살펴보면, 전제주의의 오랜 전횡에 대한 반발심과 정치적 권력을 등에 업은 제도화된 종교적 폭력성에
사람들이 무척이나 시달린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정당한 권위에 대한 올바른 존중이 없는 자유는,
세계곳곳에서 확인되듯 또 다른 악한 권위로 인해 끔직한 무질서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기억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에 대한 자연스런 존중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작은 씨앗은, 아이들이 이 세상과 사회에 대한 삶의 태도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형성하는 데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칩니다.
권위에 대한 순종은 권위에 대한 신뢰를 통해 나옵니다.
그러니 모든 순종하는 삶이 자원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행동이라면 얼마나 좋고 이상적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설령 어떤 세워진 권위에 대해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권위인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으로 삼고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굳이 그래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말씀을 단방향적으로 받아들일 때마다 항상 극단적인 개념을 형성해 진리의 왜곡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잘못된 권위, 악을 조장하는 권위에 대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복종해야 하는가?
그것에 저항해야 한다면 과연 어떤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할까요?
유일한 기준은 당연히 성경말씀이 됩니다.
'생각의 편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제님, 능력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0) | 2011.05.14 |
---|---|
2011찬양축제 기도문 (0) | 2011.05.14 |
두 사람 이야기 (0) | 2011.04.30 |
사랑한다면 (평안하시지요. 형제님) (0) | 2011.03.15 |
놀라운 사랑이야기 (0) | 201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