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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머니라

강가딘777 2024. 5. 18. 10:06

네 어머니라
(요19:25~27) 2024.5.12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여자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요19:26~27, 새번역)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마리아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자신에게 닥친 이 비극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이 참혹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아들 예수는 십자가에 손발이 못박혀 피를 흐르며 고통스런 죽음에 들어갔다. 죽음에 가까워진 아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휑한 눈엔 마른 눈물이 흘렀다.

예수에 대한 소문이 온 동네에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의 행적은 단기간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컀다. 좁은 이스라엘 사회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의 말과 행동은 이스라엘이 은연중 고대하던 메시야를 떠올리게 했다. 그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품기에 충분했다.

수 년간 이어온 놀라운 기적들과 능력의 말을 목도한 이들로부터 예수에 대한 메시야 논쟁이 불거졌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주목했고 그의 행동을 눈여보았고 그의 정체를 궁굼해했다. 여러 이유로 사람들은 예수를 향해 몰려들었다.

마리아는 엄청난 인파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를 설파하는 아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전 천사로부터 받은 수태고지와 예수가 어릴 때부터 심상찮은 말과 행동을 마음에 두었던 것을 기억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확신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계획하신 일이 이 특별한 아들을 통해 드디어 이뤄질 것이라고.

그런데 이 흉칙하기 짝이 없는 십자가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뜨겁게 내리쬐던 햇볕이 어느덧 가셨다. 하늘에 언제 몰려왔는지 모를 먹구름이 가득하다. 한껏 뜨겁게 불타오른 군중들의 감정은 조금씩 식어가고 있었다. 어떤 이는 여전한 분노로, 어떤 이는 호기심으로, 어떤 이는 일말의 연민으로, 어떤 이는 절망과 낙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았다. 몇몇은 골고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슬쩍 뒤돌아보고 저주받은 자라며 혀를 끌끌 찼다.

여러가지 기운이 혼재된 골고다였다. 군중들은 각자마다 어두운 눈빛을 띄었고, 내딛는 무거운 발걸음에 뿌연 흙먼지가 일어났다.  

마리아는 차갑고 음울한 분위기가 감도는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꿈이었다. 못박힌 손과 발에 피를 흘리며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들의 얼굴위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열렬히 환영받던 지난 모습이 빗바랜 환상이 되어 오버랩되었다.

순간 깨어난 현실은 너무나 비참했다. 마리아는 살면서 지금까지 이런 끔찍한 경험을 겪은 적이 없었다.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무너진 어머니의 눈엔 이제 눈물이 말랐다.

아들은 자신처럼 생기를 잃어가는 육신의 어머니를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옆에 서있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도 당부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

~~~~~~~~~~~~~~~~~~~~~~~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지시하심을 받들어 이후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의 집에 모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여럿 있음에도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지목해 육신의 어머니를 책임지고 섬기도록 명령하심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제자 요한에게 예수님의 어머니를 네 어머니로 섬기도록 명령하는 것은 어떤 현실적인 이유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조만간 불행한 일을 당하고 불안정한 환경이 지속되기에 오랜기간 생존해 더 안정적인 섬김이 가능한 요한에게 어머니의 거취를 맡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는 아이를 잉태하기 전에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통하여 태어날 예수에 대해 이미 들었습니다.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눅1장)

어머니 마리아가 어떤 마음을 품고 예수를 키웠는지 성경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예수를 보는 눈은 분명히 남들과 달랐을 겁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서 성장한 이후 어머니 마리아가 나오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살펴보면,

- <동방의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이를 찾아 베들레헴에서 왔다. 그들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를 드렸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마2장)

-  <요셉의 꿈>에 나타난 주님의 천사의 경고를 듣고 헤롯왕의 유아살해를 피해 아버지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야곱으로 피신하였다. 헤롯왕이 죽자 에굽에서 나와 갈릴리 지방 나사렛 동네에서 살게 되었다. (마2장)

- <밤에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님의 한 천사가 나타나 말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것이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천사들이 떠나자 목자들은 천사들이 알려준 일을 보러 베들레헴으로 급히 달려갔다.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낸 후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이상히 여겼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다. (눅2장)

- 난지 8일이 되어 아기에게 할례를 행했고, 천사가 일러준 이름대로 예수라고 하였다. 모세의 법대로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 차서, 그들은 아기를 주님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예루살렘에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성령이 임한 <시므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보고 말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고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시므온은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온 여든 네살의 여예언자 <안나>는 아기 예수를 보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친 뒤에, 갈릴리의 자기네 고향 동네 나사렛에 돌아왔다.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 (눅2장)

-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소년 예수를 예루살렘에 두고 왔다는 것을 그의 부모는 몰랐다. 나중에 예수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가서 찾았는데, 사흘 뒤에야 <성전에 있는 예수>를 발견했다.

예수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예수를 보고 놀라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눅2장)

-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셨고 예수님와 그의 제자들도 초대를 받았다. 잔치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졌고,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답하셨다.

예수님께서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워고, 그 물을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라고 하셨다.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신랑에게 보통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서 이 <첫 번째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뒤, 예수님께서는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가셔서 며칠 동안 머무르셨다. (요2장)

- < 예수님의 승천 이후> 그들은 올리브 산이라고 하는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11명의 제자들은 성 안에 가서 묵고 있는 다락방에 모였다. 이들은 함께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 (행1장)

- <본문>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19장)

-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마12장, 막3장, 눅8장은 가족의 관계를 새롭게 재설정하는 듯한 본문의 이해를 더욱 강화하는 동일구절들이다.

본문은 예수님과 어머니와의 또 다른 일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군중에게 둘러쌓인 예수님께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던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 형제들을 발견한 누군가가 이를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그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가 나의 어머니이며, 누가 나의 형제들이냐?"

그리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고서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나의 어머니와 나의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12:48~50, 새번역)

거의 동일한 말씀들입니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막3:31~35, 새번역)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요, 나의 형제들이다." (눅8:19-21, 새번역)


피는 진하고 끊을 수 없습니다. 부부는 이혼하면 남이 되지만, 부모와 자식은 결코 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혈육의 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를 제시하십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서로 발견하고, 그 뜻을 밝히는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가는 삶을 서로에게 권면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이 내 삶의 기본원리로서 어느 때나, 어디서나, 무슨 상황에서나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내 가족만큼이나 믿음의 동역자들과 이웃들을 친 혈육과 같이 대하고 있습니까?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온 성경의 두번째 강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마태복음 5장에 나온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리는 말씀 중에,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거나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무슨 상을 받겠고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는 말씀과 결을 같이 합니다.

본문의 동일 구절들을 종합해보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내 형제 자매가 되고 내 어머니가 됩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혈육의 관계인 형제 자매와 어머니보다 더욱 가까이 여겨야 할 사람들은, 동일한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라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을 접할 때마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신앙을 잠시 접고서 같은 신앙안에 들어있는 사람들하고 어떻게 하면 더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고 꾸준한 교제를 이어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항상 이 단계에서 멈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놓치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것에 대한 세세하며 진지한 고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항상 단순한 기독교 교리로 '의역'해 버립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주와 구주임을 고백한 후 교회에서 요구하는 신앙의 모습에 매진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결국 이것으로 향한다고 가르치고 배웁니다.

우리가 영광스럽게 여기던 교회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믿음은 이런 것이라고 자랑하며 가르치던 사람들의 말은 이제 쓸모없고 헛된 것이 되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재고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진정 사고(마음)를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를 막고 있는 이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이것을 해내자가 아닙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하고, 또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참으로 바라시는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것의 출발점으로, 마태복음 28장 끝절에 있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이 무엇일까를 깊게 생각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