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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대한 오해4 - 성령충만이 기계적이고 비인격적인 능력의 임함인가요

강가딘777 2009. 6. 4. 13:25

 

바쁜 일정속에서도 친절하게 답변을 보내주신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내용을 다 수용하며 말씀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노력하렵니다.

 

 

(아래글은 목사님께 더 이상 전하지 못한 제 생각들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 걱정되는 부분을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사모하여 기도하는데 매우 개인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 그러면 제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주님의 제자로 살겠습니다'라며 어떻게든 주의 제자가 되려 한다. 또한,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문제, 갈등, 질병, 자기 성취 등) 극복하고 누리는 것을 성령 충만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먼저는, 제 믿음의 고백에 100% 진정성이 있는가 물어보게 됩니다.

내가 진정으로 회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에 대한 완전한 진실성이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결론은, 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되시는 분이신데, 그런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 모습, 저의 삶은 '온전하게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친밀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듣고 순전하게 따르는 양의 모습이  제 마음의 상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성령의 내주하심(성령 받음)과 성령의 충만함의  순차적 관계에 대해 단정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입니다.

격하게 표현한다면, 우리가 어떤 부합된 조건에 맞춰졌을 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실까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성화로 가는 전인적인 변화는 많은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목사님. 저의 소견으로는, 우리는 이미 '된' 자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으로 '여겨'주시지, 우리가 본질적으로 '진짜' 의인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 그 자녀된 신분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둘째아들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전심으로 아들을 환영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 사랑의 진정성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탕자가 다 용서받았다고 집을 떠나기 전의 마음과 행동으로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을 대한다면 그는 진정으로 용서받은 자가 아닐겁니다.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은 조건없는 것이지만 그 사랑을 받는 우리는 깊은 내면의 변화를 통한 삶의 거듭남이 있게 되는 것이 그 한없는 은혜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이기적인 목적으로 간구할 때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을 허락하셨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는데 멈추게 될까요? 

성령충만이 기계적이고 비인격적인 능력의 임함인가요? 

주의 영이 임하심으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 이전의 자아와, 욕망과 편협한 마음, 죄악된 모습을 버리게 하시고 

나를 넘어서 남(others)을 보게 하시고 밝히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과 비젼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는 인격적인 성령의 역사가

성령 충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이 사람의 관계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성령충만한 것이라고만 제한하여 설명한다면, 

여전히 정화되지 못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은 오히려 그 반대의 문제들이 생겨나게 할 것입니다. 

이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냐면,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에 부합된 삶의 행위나 올바른 성도로서의 모습의 틀을 주변 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 보여주면서 자신이 성령충만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으려는 외식적이며 위선적인 신앙인들을 양산하는 데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이 그토록 책망하셨던 바리새인, 그들의 삶과 너무나 비슷할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제가 한가지 더 의식하는 것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악의 영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염려하여 항상 근심속에서 사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신 팔에 의지하지 못하는 불신앙의 모습일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넘어뜨리고 실족케하려는 악한 영들의 궤계와 훼방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여러 모습으로 처처에서 사람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성령충만하지 않고 기쁨과 안식이 사라졌을 때 틀림없이 내게 악한 영이 방해하고 있음을 인정하면 어떨까요?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에게서 예수님을 멀리 하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감격함으로 그를 영접하여 믿고 본받아 따르려는 간절한 마음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현실의 정욕과 자랑에 빠지게 하는, 우리를 속이는 사단을 의식하고 대적하여 올바른 믿음의 길로 다시 서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주님의 헌신적인 그 사랑이, 성령의 도우심과 동행하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여전히 그런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으시는 한량없는 사랑의 은혜에 반응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