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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공동체.. 율법을 밝히 앎이라

강가딘777 2023. 1. 17. 22:35

기쁨의 공동체 (느8:1~12)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율법책을 가지고
3.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새벽부터 정오까지 모든 사람앞에서 읽으매)
5. 책을 펼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8.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다 깨닫게 하니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10.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것이 너희 힘이니라 (여호와 앞에서 기뻐하면 힘이 생깁니다/새번역)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준 말을 밝히 앎이라
13. 그 이튿날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하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여서 (초막절을 지키고자 그 규례의 순서와 형식에 대해 자세히 배운다)

느헤미야-에스더서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귀환 이후 성전을 짓고 성벽을 재건축하는 일련의 과정이 나온다.
본문의 주요 단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율법이다. 율법의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 연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당시 귀환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율법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가?

그들은 포로가 된 이후 계속해서 스스로 질문했을 것이다.
우리는 왜 나라와 성전이 무너지고 비참한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고 인도함 받은 우리가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어찌하여 우리 조상들은 거듭된 불순종과 불신앙의 역사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결국 심판을 받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파기되었느가? 아니면 유보되었는가?

이스라엘을 지탱하던 4개의 기둥은 이와 같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언약백성으로서의 시내산 언약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땅
-다윗의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다윗언약
-예루살렘성전은 야훼의 거처, 야훼의 임재가 빛나는 곳이라는 예루살렘 성전신학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아담의 후예들은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버린바되었는가? 완전타락하여 아무런 구원의 희망없이 떠도는 존재가 되어 죄악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는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꾸준히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약속의 땅을 허락하시고 나라를 세우시고 성막괴 성전을 지어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법을 내려주셨다.

오늘 본문은 오랜기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시급하게 정비해야 될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말하고 있다. 율법을 다시 세우는 것이 그것이다.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모아놓고 온종일 율법의 말씀들을 듣게 하였다. 곳곳에 배치된 레위인들이 율법의 자세한 의미를 해석하여 들려줌으로 모든 백성들이 깨닫도록 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들의 조상들이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시련속에 있게 되었는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희미하게 기억해왔던 여호와 신앙을 바로 세우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호세아 선지자의 간절한 호소가 임한 듯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6:3)

그들은 자세히 해석된 율법을 듣고 그 내용으로 인하여 회한과 감사의 서로 다른 성격의 눈물을 흘렸으리라. 하나님께 대한 계속된 반역으로 인한 진노하심의 심판에 대한 애통함과 회개의 눈물일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들이 유기되어 버림받은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인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듣고 이해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한 날이 되었으므로, 지도자들은 오늘 이 여호와의 거룩한 날에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는 것이 옳다고 백성들을 독려하였다.

그들에게 율법은 무엇인가?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때 필요한 명령이요 율례와 규례이다.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이 율법은 우리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난이도 높은 법이 아니다.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만을 가지고 은혜에 반대되는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다. 모든 이들을 유익하게 하는 법이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와 정의를 따라 이 땅을 살아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공의의 법이었다.

<성전과 율법>------------------------------
성령강림 사건 이후 스데반 집사는 은혜와 능력이 충만해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7장에는 거짓증언으로 공회에 붙잡힌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시간이 그려져있다. 스데반은 군중들로부터 돌을 맞아 숨을 거두기 전 긴 설교를 한다. 설교의 핵심은 성전과 율법이다. 유대인들이 그를 고발했던 죄목이기도 했다. 그가 믿는 예수가 성전을 허물고 율법을 뜯어 고친다고 했던 말을 전하고 다니니, 이는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라 여겼다.

선민인 유대인들이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성전과 율법이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신앙의 모습들은 여기에서 기반한다. 선택된 백성, 약속의 땅, 영원한 다윗의 나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유대신앙의 핵심이 되었고, 성전과 율법은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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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와 어떻게 이어지는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율법이 폐기될 운명이었다면 하나님은 왜 그토록 공을 들여 이스라엘과 거듭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가르치시는데 열심을 내셨을까? 왜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성취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을 허물고 사흘만에 다시 세우는 분이요, 모세의 율법을 성취하러 오신 분이시다. 여호와신앙에 열심인 유대인들은 그것을 신성모독이라 하며 예수님을 죽일 구실로 삼았다.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승화되었다. 율법은 그를 통해 성취되었다.]

지금 우리는 그 예수님의 무엇을 보고 믿음을 가지며 어떤 믿음으로 서있는가? 믿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저 신으로의 예수님을 우상처럼 섬기면서 의식과 주술같은 형식에 자신을 버려두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들을 전체 성경에 비추어 해석하여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구체적인 내용들을 깨닫고 그것들을 삶의 자산으로 삼는가? 무엇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믿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