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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대한 오해3 - 성령받음과 성령충만

강가딘777 2009. 6. 2. 07:33

 

집사님,

보내주신 글을 읽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고민하시는 모습이 좋습니다. 말씀이 그러한가 하여 깊이 알아보려고 했던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보내주신 글에서 크게 가지 주제에 대한 논의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성령 받음과 성령 충만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역사가 개인적인가 혹은 관계적인가에 대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성령 받음과 성령충만에 관한 논의에서 논란이 되어왔던 것은 성령세례였습니다.

성령세례를 성령 받음으로 보는 이들이 있고, 성령충만으로 보는 이들이 있어왔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영접할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으로 사람은 성령을 받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것으로 봅니다.

교회는 이를 확증하고 교인됨을 확증하기 위해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음이 없다면 물세례는 베풀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안수를 통한 성령의 오심은 문맥을 가지로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성령을 받지 못한 경우인데, 이는 말씀을 전하는 자가 온전한 말씀을 전하지 못한 것과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의 권위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경우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성령께서 역사하사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믿음의 고백을 하게 하시는데,

이런 사람은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기고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나타나 이전에 살아왔던 생활을 회개하고 돌아서

이전과는 달리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성령 받음은 한번으로 계속되지만, 성령충만은 반복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항상 유지되지만, 성령 충만한 생활은 사모하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봅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번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엄밀히 구분하자면 성도 개인에게서 출발해서 성도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지역으로

확대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설교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한 균형이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사모하여 기도하는데 매우 개인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성도들의 기도에서 확인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역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하시는 권능의 역사이고,

복음으로 삶의 질서를 세워가는 제자의 삶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에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명령과 함께 곧이어 나오는 말씀이

예배와 감사와 피차 복종(부부, 부모와 자녀, 상전과 )인데 여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생활을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사는 순종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에

성령 충만한 역사를 기대할 있다고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성령 충만과 떼어 놓고 생각할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 그러면 제가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주님의 제자로 살겠습니다라는 기도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주의 백성임을 알고 누리며 살기에 아내와의 사이에서,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가르치고 인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사모함으로 성령으로 충만케 되기를 간구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나라를 튼튼히 세워나가는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집사님께서 모든 성도들 각자가 먼저 성령충만을 받아야 개인과 사회와 교회가 변화된다고 여깁니다. 라고 하신 것을 충분히 공감하면서

하나님께서 개인과 사회와 교회의 변화를 위해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목표를 정하고 나갈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간구하는 우리의 모습이 뚜렷해 진다고 것입니다.

어떻게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보자는 강조점이 두고 싶지 않고, 말씀이 인도하는 생활을 따르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성령 하나님의 충만한 역사를 사모하자 차이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제자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진짜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신 말씀에서도

저의 경우는 주의 말씀에서 이미 주신 제자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려고 성령 충만한 삶을 간구하는 것으로 이어가자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주의 제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었으니 주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따라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는

몸부림으로 성령 충만을 간구하자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많은 성경의 말씀들은, 성령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 속에서 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오히려 믿음의 고백 후에도 성령 받기를, 성령충만하기를 오히려 의식하고 간절히 소원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말씀은 저와 많이 다릅니다. 제가 알고 믿는 바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이미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여기서 집사님께서 성령 충만에 관한 말씀을 하고 계시다면 앞부분의 표현과 달리 뒷부분은 저의 견해와 일치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지만 성령 충만은 언제나 사모하여야 하며

성령께서 권적으로 베푸시는 충만한 삶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은 것이기 하지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종종 오해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을 극복하고 누리는 것을 성령 충만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입니다.

문제, 갈등, 질병, 자기 성취 등은 성령 충만의 범위에 있어서 겉모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며,

너머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의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것으 보자는 것입니다.

 

집사님, 보내 주신 감사합니다.

목사의 설교와 가르침을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반응해 주시니 좋습니다.

꾸준히 이런 아름다운 교제를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사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000목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