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사람에게 있는 양심이다."
이 말은 우리교회 중직을 맡고 있는 한 집사님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처음에는 성령에 대한 하나의 비유적 표현이려니 생각했으나,
몇마디 더 들어보니 그 말한 의미에 대해 큰 충격이 몰려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양심에 의해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처음부터 심기어준 것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은 동물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많은 것을 믿음에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오감으로만 느끼는 획실한 사실은 '모든 것'의 극히 일부분일 것입니다.
이런 육신의 한계속에서 사는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영혼을를 비추셔야만
진정한 하나님의 온전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사이신 그 분이 교회청소년학교 아이들에게 성령을 설명하면서 표현한 것이 '성령이 곧 양심'이라뇨.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찾다보니 그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성령에 대한 이해가 그 분에게 전혀 없음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도 가슴이 아프고 아이들도 걱정스럽습니다.
그 분을 판단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성령에 대한 몰이해와 그로 인한 신앙생활의 내적모습이 어쩔까 하는 생각에 큰 놀람과 함께 슬픔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이후에 과연 그 분에게 성경에서 드러나는 삼위일체 성령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성령의 동행하심을 위한 변화가 주어질까요?
(하나님 아버지,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다 된자' 같고 '선 자' 같아 보이나
여전히 어리석고 연약한 자들임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우리가 위선의 껍질을 벗게 하시고,
솔직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대면하게 하옵소서.
인격적 존재이신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증거하시는 성령님.
우리가 성령님을 근심케 하였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