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

십자가 없이는 영광도 없다(막8:27-9:1)(매일성경)

강가딘777 2011. 1. 31. 17:10

 

 

 

누가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왜 십자가같은 것이 필요하냐?"

"왜 저주받은 자 같이 나무에 매달리는 비참한 죽음, 세상사람들에게서 멸시받는 죽음이 필요한 것인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막8:31)

 

당시에 제자들에게는(우리들 자신이라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납득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고난받고 버림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 말때문에 그 뒤에 이어진 사흘만에 살아난다는 말은 제자들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있는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기대했던 베드로는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따라^^ 몹시 격분되어

'그런 말 하지 마시라'고 오히려 예수님을 꾸짖었습니다.(본인은 당연한 의의 혈기로 생각했을지도...)

예수님께서는 그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꾸짖으며, 기독교의 많은 역설 중 가장 대표적인 역설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영혼)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영혼)과 바꾸겠느냐" (막8:34-37)  ~(*여기서 '목숨'은 '목숨'과 '영혼'의 중의적 표현)
 

 

"하나님의 아들에게 왜 십자가같은 것이 필요하냐?"

"왜 저주받은 자 같이 나무에 매달리는 비참한 죽음, 세상사람들의 멸시받는 죽음이 필요한 것인가?"

 

이 물음은 사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물음은 우리의 생각속에서 언제나 유효합니다. 진정한 거듭남과 변화의 여정에는 필수적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를 믿음과 구원의 문제로 진입하게 합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을 어디에 두며, 삶의 여러 고난속에서 순례의 길을 걷는 의미를 찾게 합니다.

이 질문은 결국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과 그 영광으로 귀결지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과 너무나도 뒤틀려버린 나와의 올바른 관계의 회복을 갈망하게 하여

나의 미약한 삶으로나마 그것을 살아내야겠다는 의지와 소원을 품게 합니다.

 

위의 물음은 여러분에게 어떤 생각과 의미를 가져다 주시는지요?

 

 

"믿음은 관계이기에 늘 자라고 변하고 다져져야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나에게, 우리에게, 우리교회에 누구입니까?

 

 

 

 

 

(매일성경)

"말씀이 잘 안들리고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그 말씀이 나와 상관없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고,

말씀이 나와 관계없다는 것은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내 만족, 내 느낌, 내 기대를 채우는 대상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