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설교를 판단할 의도는 없습니다.
단지 그렇게 들릴 뿐입니다.
요즘은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서든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듣고 싶은 설교, 자기 취향에 맞는 설교를 고민없이 언제 어디서나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히 말씀의 홍수입니다.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가 말했듯이,
그 말씀의 풍요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심각한 갈증과 기갈, 허기를 느끼며 살아갑니다.
환경의 편리함과 윤택함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자꾸 메말라만갑니다.
그러면서도 그 해결책을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문제점을 바로 보지도 못하는 무감각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시대 말씀의 능력은 어디서 옵니까?
항상 느껴지는 것은, 진실되고 능력있는 메시지가 부족하다는 것.
언제나 그 사람의 입술을 통해 성령의 나타내심이 있을 때 참다운 능력이 드러납니다.
매번 이야기식(성경주해) 설교를 듣습니다.
자세함이 장황함으로, 여유로움이 지루함으로, 두루 살핌이 깊이있는 집중을 방해함으로
이상하게 변질된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요?
영적분별력과 감각이 무디어진 목회현장속에서, 깨어있는 성도들은 더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정해야만 할 것은,
어쨌든 '사람'이란 부족하고 허점 많고 실수투성이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은 좋은데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버리면 뭔가 미진합니다.
한편의 옛 이야기를 구연하는 느낌만 들 뿐,
'옛날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일을 했고 저런 말을 했다.이상 끝'
헉,이런 느낌 정말이지--;;;
다루는 텍스트를 밑거름으로
우리에게 향하는 더 깊은 통찰의 말씀,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실체적인 성찰의 말씀이 부족할 때,
듣는 이들은 마치 교양강좌를 듣는 듯한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또 머리로만 습득하는 이론적인 성경공부에만 머무를 때
정작 우리의 가슴은 훈기없이 차가워만집니다.
먼저 자기의 무딘 칼날을 인식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아질텐데요...
그럴 때 막연한 기대나 무감각적인 리더십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고,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하늘을 향해 뜨겁게 기도하게 될 것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놀라운 능력과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듣는 이들의 가슴에 믿음과 성령의 불을 붙이게 될 것입니다.
* 주님께서 목회자여러분에게 매일매일의 능력과 은혜의 생수를 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 성경주해와 성경강해의 비교
주해 (註解) : 본문(本文)의 뜻을 알기 쉽게 주를 달아 풀이함, 또는 그 글 주석(注釋).
강해 (講解) : 해석(解釋)하여 가면서 강론(講論)함.
@ 성경주해 = 주석적(註釋的) 해석, 성경공부에 가깝다, 이론적이다.
@ 성경강해 = 강론적(講論的) 해석, 설교적 적용에 가깝다,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적용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