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성경의 에스라-느헤미야서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동일한 성경에 대해 독특한 관점으로 쓰여진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 하나님(필립얀시)'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인데요,
근본주의적 교회에서 성장한 그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복음주의적 관점을 가진 작가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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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와 준(準)성자
성경의 에스라와 느혜미야는 동시대 사람들로서 둘 다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위기에 직면했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라앉은 사기를 다시 회복시켜, 그들로 하여금 성벽을 재건하며 윤리 의식을 개혁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인물은 서로 얼마나 다른 전략을 채택했었는가?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그는 무엇보다 백성들의 도덕적 타락을 목격했고, 거의 정신적인 충격 속에 빠져 있엇다.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 시간 동안 에스라는 그대로 앉아 울며 땅을 치고 있었다. 그가 통곡하고 슬퍼하는 참회의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것이어서 에루살렘 성의 장로들과 온 백성들이 그에게 나아와 함께 참회하고 그들의 행위를 돌이키기로 맹서했다.
느헤미야는 에스라보다 몇 년 뒤에 등장하는데, 약간 더 저돌적인 접근 방식을 택했다. 장사치들이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에서 물건을 팔려고 성 밖에 진을 치고 있었을 때, 그는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또 유대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인과 결혼한 것을 보았을 때, 느헤미야는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몇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잡아 뽑아 버렸다.
이 마지막 장면은 에스라와 크게 대조되는 것이다. 한 사람은 백성들의 죄를 인해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슬픔과 참회에 잠긴 반면, 또 한 사람은 분노에 복받쳐 백성들의 머리털을 잡아뜯고 있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었고 또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백성들이 28톤에 해당하는 은을 운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800마일에 달하는 그 먼 길의 안전을 위해 군사들을 요청하지 않았다. 군사들을 의지한다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될까 봐서였다. 그는 안전을 위해 차라리 금식과 기도에 의존하기로 선택했다.
느헤미야는 날카로운 실용주의적 감각을 가진 고급 관료였다. 그는 주저하거나 망설이는 법을 모른다. 그는 군대 장관과 마병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들어온다. 그리고 주변 이방 국가들이 그의 재건 작업을 방해할 기미를 보이자 그 즉시로 전쟁에 대비하여 유대인들을 무장시킨다. 곧 성을 건축하는 유대인들은 각각 한 손으로는 일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병기를 잡는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대조해 보면서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자기의 신앙을 삶으로 옮기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에스라가 성자라면, 느헤미야는 준성자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성인이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는,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는 전혀 타협을 모르는 극단주의자로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까지 보이는 그런 신자를 말한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도시 한복판에 서서 피임에 반대하는 강연을 하는 분이다. “모든 아이들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녀의 말이다. 30년 전 마틴 루터 킹은 흑인들을 괴롭히는 가장 악명 높은 경찰관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경찰견과 소방 호수 앞에 무방비 상태로 서 있었다. 킹이 늘 말하곤 했듯이, 그의 목표는 백인들을 무찔러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억압자들 자신 안에 있는 수치심을 일깨우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 국가를 부끄럽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길로서 그는 폭력에 대해 완강한 비폭력으로 맞서는 방법을 택했다.
한편 교회는 몇몇의 능력 있는 준(準)성자들을 목격해 왔다. 18세기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그의 험악한 연설은 국회가 열릴 때마다 사람들의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결국 그의 ‘관료적인 성실함’이 영국으로 하여금 식민지에 있는 노예 소유주들의 손실을 보상해 주면서까지 노예제도를 폐지할 도덕적 용단을 내리도록 이끌었다. 미국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있었다.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시민 전쟁을 이끌었던 것은,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기 떄문이다.
작가라는 경력 때문에 나는 몇몇 우리 시대의 ‘성자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어떤 이들은 북미에 있는 안락한 고향 집을 떠나 중남미에서 평화 사절단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아프리카의 누추한 난민촌에서 난민들을 섬기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미국에서 도시 빈민들을 재우고 먹이는 일로 그들의 생애를 보내기도 한다. 이런 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나는 늘 영적으로 한껏 고무되어 어떤 숭고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름답게 살 수 있는 한결 드높은 비전으로 충만케 된다.
나는 또 그의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준(準)성자도 많이 만나 보았다. 일주일 내내 크리스천 로비스트들은 정장을 하고 국회의사당 주변을 돌아다닌다. 그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아이들과 낙태로 살해되는 태아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학대받는 교도소 수감자들, 그리고 그 외 인권 침해의 사례들을 담은 서류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이런 준(準)성자들은 비록 조명받는 역할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누가 ‘세계 기아 대책 협회’와 같은 단체가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마더 테레사가 한 것만큼의 일을 해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시대에는 성자들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은 아마 언제나 소수에 그칠 것이다. 이 나라에 있는 훨씬 더 많은 수의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매주 닷새 동안 오전 여덟 시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 ‘세속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며, 그들의 신앙이 날마다의 일터와 가정에서 빛을 발하도록 애쓴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특별한 비전에 사로잡히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성자들과는 다르게 평생을 신앙과 세상 속에서 갈등하며 고민해야 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성경이 이 두 모습 모두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아서 참 마음이 편하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같은 사건을 두 가지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 해주고 있으며, 그 어떤 접근 방식도 혼자로서는 온전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사람들을 휘어잡아야 속이 시원한 느헤미야는 모든 일을 계획과 경영이라는 각도에서 이끌어 가는 관료형이며, 에스라가 십여 년에 걸칠 노력에도 이루지 못한 것을 단 52일 만에 해치워 버렸다. 그는 예루살렘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성벽 재건을 완성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재건 계획이 일단 성취되자 느헤미야는 에스라에게 대단위 종교 집회를 이끌도록 부탁한다.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몇 장은 구약 역사에 있어서 가장 기념비적인 장면들 가운데 하나를 묘사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 광장에 함께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했다. 손발을 맞추어 두 지도자들은- 상식에 정통한 느헤미야의 실용주의와 가만히 옆에서 보기만 해도 감동을 주는 에스라의 순전함이 합쳐- 이스라엘 역사상 천 년만에 한 번 찾아왔던 대부흥 운동을 함께 이끌어 나아갔던 것이다. 바로 그 부흥 운동 속에서 성자와 준(準)성자는 착하고 충성되게 각기 맡은 역할들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