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차마 보낼 수 없었던 편지...

강가딘777 2009. 11. 8. 15:45

 

 

제가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목사님께서 교회내 여러가지 정황속에서 혹시 제 생각을 오해하실까 싶어서입니다.

목사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그릇된 개인적 필요가 충족되지 않았기에 이런 반응을 하는가 생각하실까 싶어서입니다.  

변명처럼 말씀드리면, 저의 거의 모든 생각의 기초는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해서 살아가는 것, 교회공동체를 중심해서 생각하는 것, 모든 삶속에서 하나님을 섭리를 이해할려고 항상 노력하는 것입니다. 물론 행동은 그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것은 잘 압니다.

제 생각이 다 맞을 수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잘못된 생각이 있으면 주님께서 저를 꾸짖어 변화시켜주시기를 원합니다.

 

지난 주 식당에서 남전도회 예비모임이 있었다는 소식에 놀랐고 기뻤습니다.

몇개월 전 임시모임이 아무 말없이 사라진 후 나름 계속 기도하던 것이라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시는구나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함께 모여서 식사하고, 임시집행부를 구성하고, 언제 모일 것인지를 의논했습니다. 

오랜만에 많이 모여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니 좋았습니다. 또, 앞으로의 빈번한 만남가운데 교제하고 뜻을 모아서 튼튼한 조직을 갖추고 많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모임이 되어가기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교제와 논의를 하면서 여전히 쌩뚱맞고 거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OO교회에서의 몇 년간 참석한 모든 모임과 교제속에서 항상 반복되는 그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기 전에, 저는 이런 행동에 대해서 매번 기도합니다. 행여 제 잘못된 생각과 그 표현때문에 교회를 어지럽히지 않게 해달라고, 주님께서 제 입술을 제어해달라 정말로 기도합니다. 또 너무 과한 참견이나 괜한 오지랖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항상 걱정합니다. 이것이 저에게 주시는 은사로서의 생각인지 완전한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느낌은 아니 그 사실이 무엇이냐면, 어떤 일에 대한 성취만을 자꾸 이야기하며 그 방법만을 이야기할 뿐이지, 그 일을 이루기 위한 사람들의 마음이나 내적인 문제에는 전혀 관심없어 보이는 모습에 대한 것입니다. 항상 형식적인 문제, 외적인 문제만을 토론하는 것, 정말 이상하고 기괴하기까지 한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상한 것일까요? 제가 유별난 것일까요?

 

그런데 시간의 흐름속에서 저는 제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확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단지 왜 그 사람의 영혼 깊은 것, 마음속 본질적인 것을 먼저 다루지 않고 먼저 생각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긴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말들, 생각들, 행동들을 보면서 참 무기력한 암담함속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을 통하여 그 믿음을 연단시키시고 우리를 성숙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처럼, 교회의 중요한 일들에 참여함은 우리의 영혼을 우선적으로 다루고 점검하고 변화시킬 좋은 기회인데 그저 일에 대한 형식과 방법과 기술적인 부분에만 힘을 쏟는지, 

 능력있고 영광스러울 것들이 이렇게 초라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왜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도 열심을 잃고 그저 표면적인, 형식적인 성도로 전락하고 말까요?

시대적인 이유와 여러 영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가 단지 교회의 일을 안해서일까요? 어떤 모임에 소속이 안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어떤 일을 계획하고 거기에 사람들을 참여시키면, 그 과정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함께 같은 장소에 있다고, 또 함께 같은 일을 한다고 해서 저절로 동일한 마음을 품게 되거나 반드시 같은 가치를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교회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주님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믿음의 태도와 자세와 실제적인 의지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정말로는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 머리로는 안다해도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연약함과 나쁜 습성과 세상의 유혹으로 오는 시험을 이기지 못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의 영적 상황을 잘 알고 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목사님께서는 그 사람의 영적상태를 알고 그 사람에게 맞는 가르침이나 조언이나 격려를 주기위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예배나 모임을 주관하시고 성도들을 대하십니까? 솔직하게 묻고 싶습니다.

말하기 정말 두렵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목사님께서 그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을 향하여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고 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이 다루시는 개개인의 상황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 영혼의 절망속에서 진정한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그 사람을 방관하고 더 나아가 방치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그 사람의 진짜 원하는 영혼의 갈망을 이해하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한 교회의 목사님은 - 머리이신 예수님의 몸된 - 교회의 지체들인 양들을 치라고 예수님께서 대리인의 신분을 부여한 목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례하다 여기시겠지만, 저는 지금 목사님이 하시는 목양의 모습은 주님께서 세우신 목자라기보다는 그저 일이 잘되어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체크하는 관리자처럼 느껴집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는 말씀을 따르는 것은 그저 지켜만 본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그 각자의 형편을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어떤 다른 것에 집중하라는 뜻도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딱한 형편을 면하기를 원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소원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실 때 어떤 조건이나 의로운 행위를 구하지 않으셨고 단지 그 사람의 간절한 믿음의 말을 들으셨을 뿐입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하나님께 계속 달라고만 하고 그저 현실적 필요만 구한다고 할 때, 어떤 이기적인 목적으로라도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께 구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성령은 그 사람의 저급하며 이기적인 기도의 내용을 변하게 하시고 그 사람에게 참으로 필요한 기도의 내용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그 사람을 온전한 기도의 자리에 서게 하시는 능력을 베푸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새었습니다. 행함없는 약한 믿음을 가진 현재의 저의 부족한 모습을 잘 압니다. 그러나 행함만 강조하는 믿음에서 오는 부조리를 뼈저리게 경험해봤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를 찿아 그 안에서 자발적인 의지를 소유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목사님에게 주님의 마음과 성령의 충만함과 그 민감함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한 성도, 한 성도를 대하실 때에 한마리 양떼를 찾으로 가는 참다운 목자로 주님앞에 서 계시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우리 전부를 다 감싸고 사로잡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일부러 답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또 이렇게 목사님께 이 글을 쓰는 것이 그릇된 행동이라면,

제가 그것을 잘 깨닫고 변화되어 돌아서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가슴아픈 성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