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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일과 주의 일의 차이점

강가딘777 2009. 9. 14. 21:45

(어떤 분의 설교입니다. 도움이 되는 말씀이라 여겨 함께 나누고 싶어 요약합니다.)

 

  

세상의 일과 주의 일의 차이점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2:5)

  

  

찬송가 450장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 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1절)

꿈 같이 헛된 세상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 뿐일세 (2절)

또, 로마서 8:5 에는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분이 뭘까요?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영의 일이 맞는 것 같은데, 30년 목수일은  육신의 일인가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이 30년 동안 사망의 일을 하셨다는 것일까요?

 

또, 골로새서 3:2 에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골로새서는 이방인들을 위해 쓴 성경입니다.

바울의 직업은 텐트메이커(tentmaker)였는데, 이 일이 땅의 것일까요?

혼돈이 옵니다. 이런 혼돈을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도식을 보기로 합시다.

   

 

 

 


여기에 종교적이라는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종교적인 일과 일상적인 일은 가치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가 구별되는 것입니다.

모여서 노는 것은 일상적인 일, 예배드리는 것은 종교적인 일입니다. 둘 다 이 땅을 살아가면서 나눌 수 있는 구분입니다.

구분된 두가지 일이 다 거룩한 일이 될 수도 있고 세속적인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일과 종교적인 일을 일치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는 일치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예로, 사례비를 받는 찬양사역자는 정말 하나님을 믿어서 찬양할까요 아니면 돈 때문에 할까요?

종교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자기욕심이나 자기이익에 매달려서 하는 일이면 세속적인 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감격스런 마음으로 찬양드린다면 이것은 거룩한 일입니다.

'예배시간에 찬양하는 일은 무조건 거룩한 일이다.' 이것은 맞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일일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일을 할 때 적용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세속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적인 것이 밑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경의 인물들은 종교적인 일을 하였는데 그것은 거룩한 일이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방선기목사님의 간증) 미국에서 공부 중 시간당 5불짜리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혼자서 저녁 8시~12시까지 4시간 동안 5층 건물을 청소했는데, 몸도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부모님을 원망할 상황이었는데, 비교의식 때문에 원망하니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청소하다 마음에 박힌 말씀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이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묵상하다 깨우친 진리였습니다.

그 후 청소의 내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제까지는 5불 벌고자 일하다보니 지겨워죽었는데

이제는 '내가 하는 일이 지구를 깨끗이 하는 일이다, 주의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쓴 로렌스형제도 부엌에서 요리하고 설겆이 하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리하는 것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다 생각하니까 그것을 열심히 했더니 거룩한 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일 먼저,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로 나누는 접근을 해서는 안됩니다.

구분부터 해야 합니다. 종교적인 일과 일상적인 일의 구분.

종교적인 일이든 일상적인 일이든 어떤 것도 거룩한 일이 될 수 있고, 세속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일과 종교적인 일은 가치차이가 아닙니다.

직장에서의 일은 일상적인 일,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은 종교적인 일입니다. 구분일 뿐입니다.

목사도 세속적일 수 있고 목사도 거룩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세속적일 수 있고 거룩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설겆이 할 때 봉사의 성격때문에 어느 정도 종교적인 성격이 들어가 있습니다.

은혜 받고 찬송부르고 집에 가서 설겆이 할 때는 남편에게 '이 놈의 웬수, 남편 잘못 만나 이것이 뭐냐' 이런다 하면

세속적인 여인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3년은 종교적인 일을 하신 것입니다. 30년 목수로 사실 때는 일상적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상적인 일하실 때도 거룩하게 사시지 않았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텐트메이킹하는 것, 그것은 종교적인 일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도 그의 삶이 거룩해질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 날(Day)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날이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일날 기도할 때 ' 6일동안 썩어질 세상에서 일을 하다가 이제 주의 나라에서 썩지 아니할 일을 하게 되어

너무 감사합니다.' 합니다. 그러면 월요일은 썩어질 일 하러 가는 날입니까?

그렇게 나누는 이분법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믈론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다 똑같은 날이 아닙니다. 구분은 해야합니다.

종교적인 날은 주일입니다. 주일도 세속적으로 보낼 수 있고 거룩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일상적인 일을 하는 날입니다.

이때도 자기가 최선을 다해 직장생활하고 헌신하면 거룩한 날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세속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룩하지 않는 날이 언제가 있느냐? 굳이 주일에 예배드릴 것 뭐 있냐?' 합니다.

아무 때나 날 정해놓고 드리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분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멤버쉽(Membership)을 갖고 있다는 것은 멤버로서 동의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다 진리지만 교회멤버들이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서 그것을 동조합니다' 하는 것, 그래서 공동체입니다.

교회에서 특별히 언제를 종교적인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 시간에 전 성도가 모여서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구분입니다.

그럴 때 멤버쉽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로얄티(Loyalty,충성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없으면 이 공동체에 왜 들어와 있습니까?

나머지 일상적인 시간에서도 얼마든지 거룩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세속적으로 설교할 수 있고 거룩하게 설교할 수 있습니다.

 

 

@ 거룩한 장소가 있습니까?

종교적인 장소는 예배당입니다. 일상적인 장소는 직장이나 가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3:5)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네가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내앞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지만 거룩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땅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관계속에 있으면 거룩한 땅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당에서 예배드리지만 앉아서 세속적인 생각만 한다면 세속적인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 거룩한 사람이 있습니까?

목사는 종교인입니다. 중립적인 단어로 참 좋습니다.

목사만을 성직자라고 얘기해버리면 여러분은 성직자 아닙니까? 만인제사장입니다. 다 성직자입니다.

(벧전2:5)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전부 다가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목사가 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이고, 역할을 하는 것이고, 설교하고 기도 인도하는 것입니다.

찬양인도하는 것도 성직입니다. 종교인으로서의 성직. 거룩하게 하면 성직자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세속인이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 안에서 빛을 발하며 사는 인생을 산다면 성직자가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 직장에서의 성직자,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상생활속에서의 믿음.

내 안에서 종교적인 행위나 일상적인 행위의 교차점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창22장)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 --> 종교적인 일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 사건을 아는 사람이 누구였겠습니까? 하인들이 알았겠습니까? 설명했겠습니까? 안했을 것입니다.

부인 사라에게 이야기 했겠습니까? 안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둘만 모리아산 사건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창(21:22)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네가 무슨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

모리아산의 사건을 보고 그 일을 이야기 했을까요?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같이 목축업을 하다보니까 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삶을 보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만 믿음을 보여준 게 아니고 일상적인 삶속에서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와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종교적인 일로 예배드릴 때 참 믿음 좋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 갔더니 육두문자 써가며 쌍욕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삶에서는 전혀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지 않겠습니까?

어떤 일을 하든지, 역할을 하든지, 장소든지 이 도식에 집어넣으면 다 맞게 됩니다.

 

 

@ 설교듣는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가 같은 것일까요?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증거한 것은 바울이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의 입에서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대화가 되었든, 종교적인 대화가 되었든,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게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삼하 16장)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맨발로 도망칠 때 시므이가 나타나 저주합니다.

상처에 소금뿌리는 짓을 합니다.  (9절) '이 죽은 개가 왕을 저주하리이까?'

다윗이 아비새가 이럴 때 가만히 있었으면 알아서 아비새가 가서 머리를 베어왔을 것입니다.

(삼상 16: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이것은 다윗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악한 자지만 시므이의 말 속에서 누구의 음성을 듣습니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대적하는 자는 우리를 봐주지 않습니다. 냉철하게 우리를 비난합니다.

그것에 분노만 하지 말고 그 대적자의 입속에서 나오는 저 이야기가 부당한 애기, 말도 안되는 애기일 수 있습니다.

그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저주받는 이야기 자체도 거룩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참 놀라운 것 아닙니까?

우리는 뭐든 다 거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쁜 환경도 원망으로 살지 않고 나쁜 환경속에서 깨우침을 주시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 어려움 당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석이 능력입니다. 모든것을 다 거룩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면 악한 마귀가 할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일상적인 일에서도 원망해가지고 세속적인 일로 만들어 버리고

종교적인 일도 하면서 불평만 하면 다 세속적인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삶가운데 우리가 가장 간단하면서도 복잡하게 이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나눌 때 이것이 주의 일이냐 세상일이냐 나누면 옳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과입니다. 결과를 먼저 말하는 바보가 어디 있습니까?

어떤 일이든 먼저 구분부터 해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적인 일이냐 일상적인 일이냐?

일상적인 일도 하나님이 뜻대로 행하면 다 거룩한 일이 될 수 있고

심지어 종교적인 일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세속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일을 한다고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거룩한 종들이 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일상적인 일을 세속적인 일과 혼돈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일상인데, 일상속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게 해주세요.

하지만 우리가 짐승같이 살면 우리 삶이 세속적인 삶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의 일과 세속적인 일로 나누지 않고, 먼저 일상적인 일과 종교적인 일로 나누고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환경들을 다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우리의 삶에서 일상적인 것까지도 거룩하게 만드는 영광스런 일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인의 직업관에 도움이 되는 책 : 성경적 직업관시리즈(원용일목사), 크리스챤 직장백서(방선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