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종교개혁
-교회 현상과 원인과 새롭게 나아갈 길
-하나님 나라의 구현과 한국기독교의 재구성
intro
괴로움보다 외로움을 선택한 사람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이단과 세속적 공격으로부터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많은 신학논쟁을 통해 신앙의 본질과 기독교의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과연 무엇이 온전한 성경적 교리인지를 고민하고 합당한 내용을 세워왔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성경이지만, 방대한 내용 속 성경본문에 다양한 해석이 지금까지도 첨예한 대립을 불러옵니다.
성경은 역사적이며 초월적입니다. 성경은 역사적이고 문학적이며 문화적이라는 성격을 이해하며 들여다봐야 합니다. 한편으론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계시이므로 성경이 초월적 진리라는 성격 또한 존재합니다. 문제는 단방향적으로 흐르는 사고 속에서 나오는 경직된 주장이 문제를 가져옵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기준은 분명합니다. 성경을 읽고 어떤 번쩍이는 생각이 들어왔고 이 기막힌 통찰을 나에게 적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성경의 내용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먼저 깊이 파악하는 일입니다.
스스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놀라운 섭리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늘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품게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차가 조금씩 쌓이며 성경을 읽을수록 고개를 자꾸 갸웃거리게 됩니다.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교회가 왜 이럴까, 나를 포함한 신자들의 삶이 이래도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이 연기처럼 피어오릅니다.
정말 의아한 점은 예수님을 구주와 주로 믿는 기독교임에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내용에 큰 관심이 없는 분위기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공백 속에서 나타나신 분이 아님에도 하나님의 큰 이야기인 성경의 통전적인 내용은 생략되고 무시되고 도외시되는 경향이 당연해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24시간 예수님과 동행하자는 감동적인 고백을 하지만 전인적인 삶의 예배보다는 교회 안 성실과 충성과 순종만을 강요받는 종교인이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는 게 병이 된 것일까요? 그저 아무 생각할 필요없이 교회에서 요구하는 형식에 따라 그에 걸맞는 모습을 충실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바른 신앙일까요?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미세한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이고 불쾌한 인지부조화를 불러오는 구체적 상황과 내용을 두려움을 떨치고 파헤치다보면 조금씩 선명해지는 사실에 도달합니다. 시작은 신학적 오류나 신앙의 형식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삶이 왜 이 모양이며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이렇게 수준 낮은 이해에 머무르게 되었냐는 자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교회가 이런 저급한 상태에 떨어지게 된 원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체계에 뭔가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교회는 그동안 아름답고 성숙되고 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지금의 교회는 여러 심각한 문제도 공존합니다. 이념에 종속된 복음, 번영신학과 기복주의, 성과주의와 성공주의, 은사주의와 신비주의, 교권주의와 교리의 편협한 적용 등입니다.
복음이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각자의 성공과 안전과 형통과 부를 얻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무속신앙화 되고, 더 큰 교회와 더 많은 신자들과 더 큰 사회적 명예와 영향력이 교회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고, 얼마나 성공한 위치에 도달했는지가 신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얼마나 성령의 독보적인 은사를 보여주느냐로 신앙의 깊이를 판단하고, 성령의 은사를 마치 개인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여기면서 그 영적능력을 계급화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기업과 같은 독립적인 지교회 형태의 교회는 태생부터 사유화되어 담임목회자는 절대 권력이 부여된 왕 같은 존재가 되었고 설교권을 독점한 제사장이 되었고 말 한마디에도 순종과 충성를 강요하는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빠르게 효과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목회 리더십의 미덕이 되었고, 그 조직을 질서있게 다스리기 위해 계급화 되었고, 그 계급화는 권력화를 낳았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축소되고, 하나님의 우주적 전인적 구원은 사람의 내면구원으로 좁아지고,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은 지극히 사사로운 개인구원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성령의 임하심속에서 새롭게 거듭난 피조물이 되었지만, 인간의 약함과 악함의 타락한 본성이 여전한 상태로 살아가는 현실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정의, 용서와 사랑의 핵심 가치는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의 은혜가 우리에겐 항상 필요합니다. 그러지 못한 채 열성적인 모든 신앙의 행위는 결국 자신의 왜곡된 사고를 강화시킬 뿐입니다.
시끄럽고 분주한 지금 이 시간 세미하게 들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잠시 하는 일을 멈추고 차분하게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군중 속에서 의미 없는 시간을 견뎌내느라 괴로워하기보다 차라리 외로운 골방에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독대해야 할 때입니다.
글을 쓰는 원칙
어떤 신학적 정의나 성경 해석에 대해 반대하기 위해 시작된 일은 아닙니다. 현실의 교회와 신자들이 왜 이런 모습, 이런 행태를 가지게 된 것인가? 세상이 주는 유혹에 영향 받아서 그럴 수 있지만, 어쩌면 교회 내부의 무언가가 잘못 작동되고 있고 이것은 일시적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점 강해지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1. 간명하게 서술한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더 깊은 성찰엔 시간과 역량이 부족하다.
2.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새롭고 독창적이고 완전한 이론은 없다. 교회는 늘 개혁되어야 하며 사사로운 주장은 계속 교정되어야 한다.
3. 무분별한 비판보다 신학적 신앙적 대안을 제시한다. 비난보다는 합리적 비판, 대책없는 비판보다는 온 전한 믿음을 위한 제안이 필요하다.
4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 씀은 인간에게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주신 게 아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지하여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5. 포기하지 말자. 좁은 길은 함께 걷지 못할 때가 많다. 외롭고 무기력한 날엔 하늘을 올려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