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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사람 결정하는 사람

강가딘777 2022. 8. 14. 12:16
부지런한 사람, 결정하는 사람 (잠6:6~15)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잠6:6~7)

설교요약)
게으름은 움직이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개미가 하는 것을 보고 삶의 지혜를 얻으라고 말한다. 부지런함의 지혜는 뭘까? (두령, 감독, 통치자도 없다) 자발성은 부지런함의 요체다. 자발성이 없으면 자기주도적 학습이 안된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수동적, 피동적이다. 어떻게 자기주도적 태도를 만들것인가?

자발성에 대해 가르치는 성경의 원리를 배워야 한다. 개미들의 자발성은 그 본성에서 나온다. 사람은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격체로서, 인격의 중심은 자기결정이다. 사람은 자기결정의 주체가 되는 존재이다. 정상적인 인격은 스스로의 자기행위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진다.

자발적인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어야한다. 결정을 못하고 한없이 세월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어렵지만 결정해야 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1)대안이 많다. 2)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지로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성숙한 인격체다. 사회생활할때 어떤 사람을 신뢰하고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가? 자기가 결정한 것을 지키고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지키고 그 결정에 책임지는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을 그런 사람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핑게대기를 잘하는 사람은 어쩔수 없이 강요에 의해 한 것이고 내가 결정한게 아니라고 하고 빠져나간다. 남탓 부모탓이다.

자발적인 인생이 되려면 결정력을 키워야 한다. 비법은 없다. 계속 결정하는 상황에서 결정하고 그것을 책임져 봐야한다.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의지로 결정을 지키고 책임은 지면서 결정력이 커지고 인격의 힘이 자라나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생이 성장하는 법이다. 부모가 먼저 자발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녀가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하는 가장 큰 책임은 부모의 몫이다.

'내 탓이야,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 선택했어' 이말을 잘하는가? 아니면 '너 때문이야. 저것 때문이야' 하면서 누구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가? 매번 남 탓을 하는 사람은 그 내면에 자발성이 없다고 보면 된다.

결정하는 사람, 결정을 지키는 사람, 결정을 책임지는 사람, 그런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아이가 작은 결정도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한다. 자기가 한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아이의 인격성을 키워야 한다.

믿음도 결정이다. 믿음은 은혜이고 선물이지만 은혜받은 영혼의 자기결정이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으로 부름받았을때, 하나님이 선명한 청사진을 주셨는가? (히11장) 아브라함이 갈 바를 몰랐다.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갔다. 안 보이고 안 잡혔지만 하나님을 믿고 결정했다. 모세도 바로공주의 아들로 이집트의 왕자로 자랐다. 히브리 백성의 피가 흐른다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겼다. 모세가 자기판단으로 수용하는 결정을 했다. 성경에 가득한 것이 믿음으로 자기 삶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완벽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앞에서 겸손히 믿음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도 견디는 것 그런 가운데 결국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권세, 영광을 맛보고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부지런한 삶을 살아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자는 세상가치의 부지런함을 말하는 것 이상이다.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부지런한 삶을 누려가는 것이다. 자기 삶을 결정하고 결정을 지키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혼의 부지런함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결정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분이 기뻐하는 삶을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결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마땅히 행할 믿음의 결정을 주저하면서 지도자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나한테만 은헤를 안주셨다고 하고,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되었다고, 자기가 어둠의 질서속에 사는 것을 하나님께 원망한다. 마땅히 행할 믿음의 결정을 안하면서.

잘못된 삶의 습관이나 죄는 끊기로 결정해야 하고 떨쳐버리기로 결정해야 한다. 또한 선한 일을 하기로 결정하고 헌신하기로 결정해도 안되니까 기도하는 것이다. 결정을 지킬 힘이 부족하니까 그것을 지키기 위해 힘을 달라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져 사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부모의 마음처럼.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결정을 하고 그 결정으로 도전을 하면, 넘어지고 순간 실패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나를 믿고 내 결정이 완벽하다고 결정하고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결정하지 않고 결단의 씨름은 안하면서 다른 사람을 탓하고 하나님 탓하는 핑게와 원망의 마음은 믿음의 저급함이고 영혼의 게으름이다.

우리는 죄로 연약한 인생이다. 결함이 없고 후회할 것이 없는 완벽한 결정하고는 거리가 먼 인생이다. 그러므로 정말로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로 결정해야한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있는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죄와 어둠, 탐욕이 아니라면 담대하게 결정하라. 자유롭게 결정하라. 어떤 쪽도 괜찮다.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교정하고 바로잡아주실 것이다. 믿음안에서 아름다운 결실들을 담아내면서 걸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자기 삶을 결정하고 자발적이고 부지헌한 삶을 멋지고 자유롭게 환하고 밝게 꾸려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한다.
요약 끝)


설교의 대략적인 요지를 정리해봅니다.
시람에게는 자발성이 매우 중요하다. 자발성은 자기결정으로 드러난다.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라. 이것이 자발성을 가진 성숙한 인생이다. 성경의 인물들도 그런 결정들을 했다. 믿음도 역시 결정이다. 죄와 탐욕이 아니면 결정을 하는데 주저하지 마라. 남을 탓하고 하나님 탓하지 말고 스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결정을 하고 그것을 지킬 힘을 달라 기도하라. 결국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설교를 들으며 몇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자기주도적 삶과 결정의 연관관계는 무엇일까?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은채 내리는 스스로의 결정마다 올바른 결정이 될까?
-더 나아가,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이든 과감히 결정하고 그 결정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독려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각자가 결정을 하든 아니면 결정을 보류하거나 회피하든지 우리는 그것에 책임을 삶으로 응당 지게 된다. 그러므로) 결정을 잘하고 그 결정된 내용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가 맞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약속의 말씀을 따르는 믿음의 결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결정을 뜻하는가? 혹시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는 그 어떤 것도 믿음의 결정이 되는 것인가?

설교에서 말씀하시는 자발적이고 자기주도적 삶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삶의 진취적인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모습을 떨쳐내고 도전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올바른 결정인가요? 죄와 탐욕을 향한 결정이 아니라고 스스로는 생각해도 그 이면에는 악으로 기울어진 걸음이 있지 않을까요? 최선과 치열함속에서 내려지는 자신의 결정이 모두에게 선이 되는 게 아닙니다.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구조속에서는 자신의 선택으로 본의아니게 피해를 받고 피눈물을 흘리는 타인이 생길수 있음을 돌아봐야 합니다.

개인의 선택과 결정에는 응당 책임이 따릅니다. 매번 결정을 미루는 결정장애나 결정을 회피하는 습관은 사실 그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연관이 깊습니다. 내 선택이 원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현재의 선택을 피하게 합니다. 다양한 선택지와 책임을 져야한다는 부담감이 주요한 원인일 수 있지만, 어떤 선택을 할 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한가지, 양면성을 봐야 합니다. 자기주도적 삶을 살면서 어떤 결정이든 잘하는 사람은 어쩌면 굉장히 권위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안하무인의 태도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자기결정의 범위가 넓어져 자기생각이나 자기경험을 자꾸 우주의 중심에 놓으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자기의 선택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꼰대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자기결정에 능한 사람은 자존감이 남달라 자기주도적 삶을 적극적으로 행할 수 있을텐데, 대부분 자기애가 유난히 강해서 매우 이기적인 태도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 자존감이 결여된 사람은 자기비하에 빠지기 쉽고 자신감이 떨어져 선택과 결정이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숙제로 다가옵니다.

물론 자발성을 가진 삶의 태도에 대한 긍정성을 강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끌려다니다 제대로 된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한 이들은 결국 짙은 후외와 함께 남을 탓하고 하나님 탓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결정과 자기주도적 삶의 연관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입니다. 자유의지라 함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를 말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성격과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환경이 존재합니다. 여러 조간에서의 한계가 있고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서려는 다양한 도전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질문을 해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결정 자체가 중요한가? 무엇이 올바른 결정일지가 중요한가? 어떤 것이 제대로 된 결정일까가 쉽지 않기에 삶의 지혜와 경험과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인생의 한계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용성을 배워갑니다. 우리가 건드릴수 없는 부분에서의 수동성과 피동성은 당연합니다. 어쩔 수 없는 포기가 아니라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온몸으로 감당해내는 법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도 수동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서려는 진취성, 도전정신을 배웁니다. 바로 이 부분에 결정의 순기능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어진 환경애서 게으름과 지나친 수동성을 떨쳐버려야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시회에서도 지금의 불의와 속박을 거부하려는 선택을 해야하고, 양극화와 생명경시와 폭력에 맞서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선택과 결정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힘과 노력을 다해야 하는게 하나님 백성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선택(결정)의 자유와 함께 결과에 대한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 책임은 그 사람에게서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정면으로 책임을 마주하든지,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가든지 그 사람의 결정에 대한 책임은 평생 그를 따라다닙니다. 책임에도 다양한 측면이 있다는 말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제대로' 된 책임을 말하고 있겠지만, 여기에도 다양한 인간성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어떤' 책임을 말하는지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그 책임의 모습이 굉장히 모호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삶의 태도를 정립하고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신앙의 수동동(수용성)과 능동성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8)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히1:1)

믿음은 우리에게 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정이 있었고 우리는 그에 순종하고 반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미래의 일에 경고하시자, 노아는 두려운 마음으로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나라와 땅을 약속하시자, 그는 이에 순종하여 떠났지만 정확한 목적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출애굽할 지도자로 인도하셨고, 모세는 언제나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은혜의 선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믿음은 하나님의 결정이셨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고 순종하며 약속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믿음이 은혜받은 영혼의 자기결정이라는데 깊이 동의합니다. 우리가 받은 믿음에 대해 순종이라는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섭리는 다르게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서는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속 인물들의 믿음에서 나온 결정들에 탄복하지만, 그 믿음과 순종을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열심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 우를 범합니다. 동일한 인물들이 했던 어리석고 치명적이고 잘못된 결정들이 하나님의 근심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성경에는 허다합니다. 그들이 그런 결정을 할 때 그것이 죄와 탐욕을 좇는 것임을 자각하고 있었을지 궁금해집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서 받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순종과 능동적 반응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늘상 온전한 순종과 올바른 결정을 방해하지만, 바른 결정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와 함께 무엇이 믿음의 결정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결정한다는 말은 참으로 모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으로 결정한다는 말은 아름다우나 구체적인 삶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죄외 탐욕이 아닌 담대하고 자유로운 결정을 하는데 주저하지 말라는 말은 자기계발에서 나오는 하나의 교훈과 닮아있습니다.

믿음은 받는 것으로, 수동성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이것이 강화되면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매달리고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해 게으름을 피웁니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적극적인 수동성을 믿음의 순종으로 착각한 채 원치 않은 결과나 환경에 대해 남 탓, 하나님 탓이라는 비극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믿음의 올바른 반응으로서의 자발성과 자기주도적 삶을 찾아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결정이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복음의 정신을 각자의 삶과 교회공동체를 통해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세워나가기 위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믿음의 결정들을 담대하게 부지런히 펼쳐나가야겠습니다.



(떠오른 질문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답을 칮아가는 과정을 적어본 것이라 중구난방처럼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부족함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