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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믿음은 무엇인가

강가딘777 2020. 5. 9. 21:49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얼마전 한 무리들(태극기부대&한기총 전광훈목사)의 신앙을 빙자한 정치적행위를 보면서 절로 들었던 생각이다. 하나님 나라는 폭력과 차별과 편향적인 정치적 주장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크리스텐돔(기독국가주의)은 더욱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런 이상한 성향의 사람들로 만들었을까? 그런데 그들의 말과 행동속에서 드러나는 가치와 세계관은 일반적인 교회의 생각과 많이 다르지는 않다는게 중요하다. 이는 역사적 교회들의 거듭된 실수와 퇴행적 사고와 많이 닮아있기도 하다.
 
신앙은 결코 편가르기가 아니다. 누구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 편에 속하게 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도 하나님이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우리가 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 백성으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은혜는 죄와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부터의 대속의 능력이 임한 것이다. 우리는 '아무나' 그 은혜를 받고 누리지만 '아무렇게나' 살아도 그 은혜에서 벗어나느냐 벗어나지 않느냐가 지금 교회들의 경계선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것은, 지금 여기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공동체에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교회는 영적이라는 말을 통해 신앙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것때문에 지극히 개인적, 내면적, 내세적인 형태로 굳어지게 만들었다.
 
성경을 잘못 읽은 것이다. 특정한 전제로만 성경을 대하기 때문이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대한 왜곡된 접근은 하나님을 오해하게 한다. 잘못된 인식이 정당한 신앙의 자세인줄 착각하게 만든다.
 
계시된 말씀인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교회에 만연해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면서도 오직 예수님에 대한 애뜻한 김정을 가지는 것이 진짜 신앙이라고 믿는 거짓 신자들을 양산해낸다. 특정한 공간에서 뜨거운 찬양을 부르며 눈물 흘리지만 현실의 곳곳에서 구조악과 깨어진 관계와 가난때문에 신음하며 거친 마음을 부여잡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조차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이 세상 삶에 대한 신앙적 고찰보다는 세상에서의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자랑한다. 오히려 세상의 어두움은 근본적이며 건드릴 수 없는 문제라며 도외시한다. 한편으론 내세 천국의 보장에 대한 감사의 댓가는 주일성수나 십일조, 봉사와 선교로의 활동으로 수렴된다.
 
더 심각한 것은,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면서도 잘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모종의 시스템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출발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잘 모르는 것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좁고 편협하며 단편적인 내용만을 예수 믿는 신앙의 전부라고 여기게 하는 교리적 한계로부터 나온다. 수많은 역사적 공격으로부터 수호해낸 정통의 교리들이라 자부하지만 이것만의 선별적으로 강조가 지금의 작태를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지금 성경의 더 풍성하고 오묘한 하나님의 진리를 너무나도 작은 푯말로 만들어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전투적인 사람들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