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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가딘777 2019. 8. 24. 17:07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에스겔 22:1~16, 17~31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안에서 오로지 예수를 말하기만 하면, 구약성경은 몰라도 되는 책으로 여기는 태도가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다. 우리는 그 말씀아래 굴복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 아래 구약을 읽어야 한다.

 

문자주의적인 접근이 아니라, 세심한 관찰을 통해, 여러 번역본을 활용해서, 문맥 살피기를 통해, 성경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는 구약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 한계까지도.

 

드디어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임했다. 예수님 그분이 하나님 나라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곧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 된다. 구약은 그 하나님 나라 삶의 구체성에 대한 중요한 힌트들을 제공해준다.

 

에스겔서를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본문의 문맥을 따라 몇가지 진지한 질문들을 해보는 습관을 가지면,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워진다.

 

질문1)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성전의식, 영원히 나라로 보존되리라는 다윗언약 위에서 세워졌고 유지되는 나라였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그토록 엄중하게 심판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4)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데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겔18:30)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의 죄로 우리를 벌하는 것은 공정한 처사가 아니라고 항변했다.(겔18장) 자신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를 어떤 죄도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자신에 대해 핑계를 대는 것일까? 심각한 착각이 그들의 눈을 가렸거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각자가 지은 죄 문제다. 죄악이 일상화되어 자신들이 죄 가운데 있는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죄는 온 사회에 만연한 상태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개인의 실존은 내가 행하는 어떤 작은 섬김이나 헌신의 문제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의 시선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신앙이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하지만 반드시 공동체적으로 확장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19-21)

 

지금 우리 신자들의 삶의 실존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영혼 안에 거하는 죄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능력은 죄와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고 있었던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죄가 신자안에 여전히 잔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이다! 바을은 로마서 7장에서 이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의 대가인 존 오웬의 표현을 빌자면. 죄는 독립적 인격의 경향성으로 우리 영혼 안에 여전히 거하고 있다. 온갖 유혹과 변하는 환경을 무기로 우리를 사단에게 내어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 죄는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이어가는 동안에 끊임없이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대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믿음으로 인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의인이라 칭해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죄에 대해 완전히 자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만이 우리를 지배하므로 죄란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한다. 죄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실존이면 얼마나 쉽고 좋을까? 그러나 성경은, 현실은 그러지 않다고 (슬프지만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예수의 의로 옷입었을 뿐이다. 우리는 완전한 의인이 아니다. 의인이라 칭함받는 죄인인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법정적으로, 신분적으로 의인이라 선포되었고, 죄의 지배를 벗어나 성령과 은혜의 지배아래 있게 되었지만, 우리의 영적 실존은 영혼안에 거하는 죄와의 동거다. 죄는 예전처럼 우리에게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지만 호시탐탐 우리를 유혹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아래 있도록 끊임없이 부추긴다.

 

 

질문2) 하나님께서 심판을 결심하실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의 죄악들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죄악 리스트를 보여준다. 축약해서 우상숭배와 피흘림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는 경제적 탐욕과 피흘림이 만연한 사회적 폭력에 대해 손뼉을 치며 한탄하신다.

(16가지 죄악목록 중, 종교적 타락 3가지, 성적타락 5가지, 사회적 폭력 8가지다.)

 

집단별 죄악목록이 이어진다. 통치자들, 제사장들, 고관들, 예언자들, 이 땅 백성(유력자들)

 

죄목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이 땅을 향한 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 아들까지도 공의의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게 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하나님의 마음은 개인의 감정을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12:2, 새번역)

 

 

질문3)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런 죄들을 짓게 되는가?

 

"나를 잊어버렸도다"(겔22:12)

말라기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습니까?"라고 항의할 지 모른다.

 

그들은 무엇을 믿고 살았던가?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2-3)

 

공의와 자비와 믿음 같은 율법의 정신은 안중에 없었다. 남들 눈에 보기 좋은 경건의 형식만을 취해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채워줄 종교적 사회적 수단으로 삼았을 뿐. 지금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질문4)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이 되자? (겔22:30)

 

본문의 요지는, 그런 사람을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3:10)

 

(어떤 하고 싶은 주장 때문에 본문의 내용이 청중들에게 다른 의미가 되어버릴때 신앙의 왜곡이 일어날 위험성이 크다. 설교자들이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본문을 말한다고 하지만 본문이 사라져 버리고 본문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럴때마다 교회는 길을 잃어 버린다.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별 관심이 없고, 성령님을 의지한다 하지만 성령의 내주하심과 역사하심에 대한 감각이 거의 없는 신자들과 교회들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저 구원의 복음이 간절하게 필요한 존재들임을 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기쁜 소식인 그분이 오셨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알아가는 것, 그것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의 본을 따라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안에 우리의 삶이 놓여지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