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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유혹을 이길 수 없는가?

강가딘777 2019. 4. 2. 09:06

왜 우리는 유혹을 이길 수 없는가?

_러셀 D.무어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은 시험은,

자신을 부양하고(돌을 빵으로),

자신을 보호하고(뛰어내려도 안전),

자신을 높히려는(천하만국의 영광) 유혹이었다.

 

우리는 필요를 채우고,

우리를 위험에서 보호하고, 

자신을 '주'로 높히려는

사탄의 부추김과 충동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이는 곧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버리려는 충동이다.

 

왜 우리는 아버지보다 빵을,

신뢰보다 증거를,

십자가보다 영광을 더 원하는가?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수 천년전부터 우주의 질서를 강탈했다. (엡6:12)

우리의 삶속에 유혹이 그토록 강한 이유는,

유혹의 궁극적 대상이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혹이란 어둠의 세력들이 메시아의 라이벌 제국을 공격하는 일이다.

 

우리가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예수와 똑같이 아버지를 신뢰하고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적 세력들과 씨름하는 것이며, 우리를 삼키려는 야수같은 영과 맞붙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는 광야로 나아가고 있다. 성령께서 맏아들 예수를 데려가신 그 똑같은 길로 마귀가 지배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그곳에 우리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비참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타락한 피조물이며 따라서 늘 "미혹"될 위험에 처해있다. (약1:14)

 

 

유혹의 첫 단계는, 자아에 대한 환상에서 시작된다.

 

인류의 조상이 타락한 것은 정체성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나는 누구인가?"

 

당신이 어떤 악습에 빠져있을때, 당신은 점차 자신의 상황이 예외적이라 믿게 되고 ("나는 신이다") 그 행위가 엄밀히 말해 절도나 시기심이나 미움이나 음행이나 권력남용 따위가 아니라는 온갖 구실을 대게 된다. ("나는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 또한 당신은 자신의 욕심앞에 무력하다고 믿고 ("나는 동물이다") 그리하여 깜쪽같이 책임에서 벗어난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유혹의 두번째 단계는, 욕심 (갈망)의 혼동이다.

 

광야에서 사탄은 예수의 갈망을 지배하여 세상을 정죄하시게 만들려고 했다.

 

사탄의 세력은 인류전체를 미혹하여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 인류의 우주적 이야기이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이 복주신 동산에서 시험받아 쓰러졌지만, 둘째 아담은 하나님이 저주하신 광야에서 시험받아 승리히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험이 닥치자, 공급과 보호와 명예라는 자기네 욕심을 기준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했다.

 

사람의 갈망이 하나님의 갈망과 합한 것인지가 관건이다. (신10:16, 롬 8:29)

시험을 통해 예수는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된다.

 

전혀 인간답지 못한 속성을 우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속성으로 치부할 때가 너무 많다. 사실 그것은 에덴의 타락 이후로 인간에게 자생하는 사탄의 속성이다.

 

욕망을 하나님께서 우주를 설계하신 지혜대로 해소하지 않으면 욕망은 영영 채워지지 않는다.

 

저 바깥의 영적세력들은 당신만의 욕심이 작용하는 방식에 따라 맞춤식 유혹을 구상한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유혹의 마지막 단계는 당신의 미래를 빼앗는 것이다.

 

뱀은 하와에게 창조주께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 신이 되는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악한 세력들은 "하나님 앞에서 밤낮" 인류를 감시하고 참소한다. (계12:10)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걷어내고 대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씌우기 위해서다.

 

하나님 나라는 유혹과 시험을 당하여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임한다. 당신은 예수라는 인물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을 생각하도록 지음받았다.

 

~~~

책 줄거리의 앞 일부분입니다. 삶공부와 더불어 읽게 되었는데 깊게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 당하신 것과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미혹당할 때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읽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