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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비로운 은혜를 무시하는 우리의 믿음이란..

강가딘777 2015. 10. 20. 16:54

자연스런 일상의 삶에서 우리의 믿음이 깊어지고 우리의 성품과 인격도 더불어 변화되고 성숙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남도 마찬가지다. 노력없는 만남은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그 어떤 자극이나 변화의 단초를 제공하지 않는다. 겉을 바라만보고 속을 헤아리지 못하는 관계는 여전히 쉬 왔다 스치듯 가버리는 바람과 같다.

 

믿음생활은 주어진 삶을 기독교적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우리가 얼마나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사느냐이다. 모든 삶의 시간들 속에서 주님을 어떻게 예배하며 성령의 인도함을 얼마나 갈망하느냐이다.

 

얼마나 말씀대로 잘 사는지, 얼마나 기독교적 제의와 형식을 잘 지켜내느냐로 우리의 신앙이 평가받는 경향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광신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신비주의 색채를 띄는 것으로 하나님께 더욱 충실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적도 있었다. 거기에 질린 나머지 우리는 그동안 내팽게쳤던 삶에 눈을 돌리고 내가 속한 현실을 건전하게 성공적으로 살아내는 것으로 신앙의 점수를 매기려고도 한다..

 

 

형식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형식을 아예 없애버리는게 아니다. 신비주의를 멀리하는 것은 신비를 통채로 무시해 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비본질을 향한 무분별한 기계적 숭배를 버리고, 본질을 꼭 붙잡으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형식을 통한 질서는 당연히 필요하며, 시시로 오는 신비로운 은혜의 기회를 무감각하게 흘려보내는 영적인 무감각에 빠져서도 안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삶의 일상에서 주시는 자연스런 은총뿐만이 아니라, 예배를 통한 신비로운 은혜, 어떤 만남이나 개인적인 사건을 통한 하나님 임재의 복을 느끼고 누리지 못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길에서 상당히 벗어난 것이며, 화석화된 신앙으로 가는 전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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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배든 어떤 모임이든 어떤 만남이든, 그곳에 임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생각하지 못하고 각자의.마음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주의깊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저 먹고 마시며 개인의 불안과 스트레스와 울화를 비워내는 도구로만 작동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한발짝 멀어지는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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