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바른 질서를 위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권위는 언제나 하나님앞에서 겸손하고 순종하며 세상의 바른 질서를 위해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나찌의 히틀러나 북한 김일성을 하나님이 세운 왕들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너무 단편적으로 왜곡된 의미로 사용하는 이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들 모든 행동의 기초로 삼는 성경구절이 있죠.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13:1~2)
이 로마서 말씀은 우리에게 질서와 권위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는 강력한 말씀이 되었죠. 그러나 모든 권위에 무조건적으로 무분별하게 따르는게 아니라는 것이 12~13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로마서13:3~8)
바로 앞의 12장에서 이어졌던 말씀도 살펴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17~21)
그 전체적인 흐름은 당시 로마제국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과 태도가 어찌해야 하는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복음전도 외의 다른 것에다 마음을 뺏기고 시간낭비하지 말라는 권면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따로 정리하겠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두고서, "종북좌파의 연극'이라 하고 '시체장사'란 표현을 하고, '좌파를 색출해야한다' 하고, 실종가족을 '선동꾼'이나 '미개한 사람들'로 만들고 '차라리 잘됐다' 하고 '좋은 공부거리가 된다'는 망언을 쉽게 내뱉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멀쩡하게 보이고 꽤나 책임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정치희망자가 연고없이 실종자대표를 맡거나 방송인터뷰에서 사실확인 안된 말을 퍼트리는 몹시도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명확한 사실관계를 드러내고 정확한 진실을 밝히면, 유언비어는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니 선동꾼이나 정신병 환자같은 이들이 떠들어대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그거죠.
사람에게, 국민에게 무엇으로 신뢰감을 줍니까? 진실과 거기에 따른 진심어린 대처가 아닐까요? 그런데 무엇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저 진실을 왜곡하는 건 좌파 선동꾼의 음모라고 하거나, 모든 잘못이 결국 현정부와 집권당 때문이라는 주장은 둘 다 터무니없고 무가치한 이데올로기적이고 편파적인 악의에 찬 편견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진실은 뭡니까? 그토록 현실주의자인 사람들이 현실을 논할때마다 왜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하여 다룰까요? 중요한 것은 사실관계이며 진실입니다. 그러나 상대주의적인 이 시대에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동일한 사실관계속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자신만의 가짜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움 앞에서 그리고 사회적 법의 테두리안에서 분명하고 엄정한 판결이 내적으로나 공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또 그렇게 되도록 사회적 협의를 통한 사회적 통제와 사회적 감시가 반드시 필요하고 또 필요합니다. 이것은 요즘의 교회에서도 꼭 필요한 것들이죠. 어떠한 국가나 사회, 교회든 심지어 개인적인 삶이나 건강에도 꼭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절한 공공의 견제와 감시가 없으면 언제 어디서든 균형이 무너지고 되고 종국에는 함께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