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 길었습니다. 개인적인 성취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부귀와 영광, 평안과 형통, 평강과 존귀를 받아 누린 그들에게 그 후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에 주목해봅시다. 그들의 끝은 어때했는지도 살펴보자구요.
사실 보통 우리는 그들이 받은 복들에 주목하고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 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선 거의 무관심합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모두 다 열렬하게 부귀와 영광과 평안과 형통을 원하지만, 그 다음 일에는 별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부귀와 영광을 받은 왕들의 주목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살펴봅니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관계를 맺었더라(대하18:1)
~하나님의 복을 받음과 남유다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죄의 씨앗을 심는 일이 한 문장속이서 서로 대비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든지 그 영적분별없는 행동이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일을 한거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대하20:35)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한 것은 왕으로서 책임져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이 나중에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는데 아하시야는 심히 악을 행하는 자이었더라(대하20:35)
~나라의 안위를 북이스라엘과의 외교적 동맹을 통해 보장받으려는 정치적 행위도 하나님은 상대가 누구냐를 물으십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
아, 여호사밧왕.. 제 마음을 지속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생전에는 많은 복을 누렸지만 그의 사후 왕국은 혼합종교의 온상으로 변했습니다.
호방하고 합리적인 생각이 자칫하면 순전한 믿음을 망치는 원인으로 작용됨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사밧왕에게는 그 아들 여호람의 악행에 대한 책임이 아주 많습니다.
다 유다왕 여호사밧의 아들들이라 그의 아버지가 그들에게는 은금과 보물들과 유다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후히 주었고 여호람은 장자이므로 왕위를 주었더니 여호람이 그 부친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대하21:3~4)
~여호사밧왕은 모든 아들들을 차별없이 대한다는 생각으로 재물과 요새를 골고루 물려주었을겁니다. 왕위에 오른 여호람은 왕권을 위협할 만한 강한 세력기반을 가진 다른 형제들의 대해 심각한 내적위협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허약하게 보이는 왕권을 물려받은 그는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린 그는 세력을 모은 후 모든 동생들과 그에 협조하는 세력들을 가차없이 궤멸시켜버림으로 아버지가 뿌려놓은 불안의 씨앗들을 해소시켜버렸습니다. 이 끔직한 비극의 원인제공자는 누구입니까?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대하21:6)
~여호사밧은 아합과 정략결혼을 했고, 그것은 남유다왕국에 두고두고 후회할만한 죄의 씨앗을 심은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정치적 결정으로 아합의 딸 아댤랴는 여호람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올라와서 유다를 침략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의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막내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대하21:17)
~왕권의 안정을 위해 동생들 모두를 살해했던 여호람 왕은 아라비아인들의 침략으로 막내아들만 남고 모든 아들을 잃는 똑같은 비극을 몸소 겪어야 했습니다. 그후 창자에 불치병이 생겨 오랜 고통끝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