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열왕기) 왕들의 이야기를 읽고

강가딘777 2011. 8. 25. 12:29

 

 

요즘 한창인 드라마때문에 조선시대의 왕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태조, 태종, 세조...왕이 되기 위한 힘 겨루기와 권모술수, 냉혹한 승부사적 결단이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올 여름의 매일성경은 왕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여로보암왕으로부터 시작된 북이스라엘은, 7번의 모반으로 왕정이 수시로 바뀐 온통 피로 점철된 역사.

반면 남유다는 애굽의 느고가 강제로 왕으로 세운 여호야김(형제)과 바벨론에 의해 임명된 마지막 왕 시드기야(숙부)를 제외하곤,

줄곧 아들에게 왕좌가 계승되었다.
그렇다고 남유다가 평화적으로만 왕권이 교체된 것은 아니었다.

왕들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하나님께 향한 모반과 반역, 변절과 배신의 역사였다.


왕들이 몇살에 왕위에 올랐는지, 몇 년간 통치했고, 치세기간 중 이룬 업적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7세에 왕의 자리에 오른 자도, 41세에 오른 자도 있었다.

무려 55년을 통치한 사람도, 겨우 7일만 왕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던 자도 있었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했는지, 온전치 못했는지, 악을 행했는지 성경은 하나님의 눈으로 가감없이 그들을 판단하고 있다.

 

두 왕국의 왕들을 판단하는 기준은 뭐였을까?

하나님은 먼저 악을 멀리하려는 그들의 마음을 보셨다.

그리고 그러지 못할 상황과 여건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또한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지금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만인제사장이라는 믿음의 형식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그 삶의 온전함에 대한 판단과 심판은 더욱 엄정하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남유다왕들 중에 주목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왕들은 하나님앞에서 정직히 행했다고 말한다. 다만 산당을 없애지 못했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는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둘로 갈라진 왕국의 첫번째 왕으로, 산당과 아세라상을 세우기 시작한 악한 왕이기도 했다.

 

@북쪽왕국의 악한 왕의 대명사 아합 왕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한 여호람 왕,

또 그의 아들로서 처남인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의 병문안을 갔다가 예후에 의해 불의의 죽음을 맞은 아하시야 왕도 악한 왕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잠깐, 여호람의 아버지 여호사밧 왕은 아합왕과의 사돈관계를 통해 양국의 평화와 존속을 흔들림없이 유지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며느리 아달랴가 그녀의 어머니 악녀 이세벨이 그랬던 것처럼 남유다를 우상숭배의 땅으로 물들게 하고 권력을 위해 왕의 가문을 멸절시키고자 하려는 것을 시아버지 여호사밧 왕은 상상이나 했을까?)

 

@아달랴의 잔인하고 포악한 권력욕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도움에 힘입어 일곱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요아스 왕,

북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에게 포로가 되기도 한 아마샤 왕, 그리고 므낫세의 아들인 아몬 왕의 종말은 비극적이다.

그들은 신복들(요아스, 아몬)과 반역한 무리들(아마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가장 특이한 왕은 다른 선조 왕들과는 전혀 판이한 행보를 한 아하스 왕이 아닐까 싶다. 

아들을 불에 지나게 했고, 산당과 산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앗수르 왕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보았던 앗수르 신의 제단을 모방해 똑같이 만들었고,

성전구조와 기물들을 자기 마음대로 변경했던 왕이었다.

 

 @역사에 유래없는 악행을 저지른 아버지 밑에 신실한 아들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왕이, 그 아들인 히스기야 왕이다.

그는 처음으로 산당을 제거한 왕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긴 통치기간(55년)을 자랑하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왕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어렵게 제거한 산당을 다시 세웠으며, 바알 제단,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일월성신을 경배하고 아들들을 불가운데 지나가게 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했다. 심지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우기까지 했다.
온갖 종교를 다 끌어모아 남유다 땅을 혼합종교 백화점이 되게 한 그는, 그의
할아버지인 요하스 왕보다 분명 한수 위라고 볼 수 있겠다.


@놀라운 역사는 이어진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하나님께서 '므낫세의 범죄'라고  꼭집어 언급하실 정도로 패악의 극치를 달린 할아버지(므낫세)와 아버지(아몬)를 둔 요시야 왕은 히스기야처럼 극과 극의 반전을 보여준다.
꺼져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지막 희망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철저한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나 애굽의 느고에게 억울할 만한 죽음을 당함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 이후 20여년동안 애굽과 바벨론 같은 강대국의 시달림 속에서 결국 남유다는 멸망의 길을 걷는다.

 

마치 돌연변이처럼 나타난 아하스 왕을 설명하기 전 바로 앞에 언급된 구절(왕하15:37)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하스 왕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을 치기로 작정하셨고, 심판을 때를 면하게 하시고자 요시야 왕에게 은혜를 베푼 죽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하스-히스기야-므낫세(아몬)-요시야.

 

이들이 만들어 낸,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역사의 롤러코스터는, 강대국 사이에 낀 연약한 나라가 감당하기 힘든 주변의 국제정세를 감안한다해도,

상식적인 측면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계획이 이제 심판의 시간으로 진입했다는 것과,

그런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왕들의 행적을 바라볼 때에,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이기적이며 탐욕스럽고 또한 추악하다.

그 실상이 단지 시간의 흐름속에 묻히고, 역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의 눈을 가릴 뿐.
조선시대 왕들의 역사나 이스라엘 두 왕조의 역사가 대단히 흡사하다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

제어되지 않는 인간 본성과 죄성이 욕망과 탐욕과 자기중심성으로 드러날 때마다, 언제나 인간은 추악해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넓게는 한 사람도 예외없는 온 인류의 모습이며, 좁게는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이다.


이런 희망없고 포기해도 무방할 인간들을 치워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들인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를 통해 용서를 베푸신다.

"그래도 용서한다. 내게 돌아오너라. 함께 잘 살아보자꾸나."
사람들과의 약속을 기억하시며, 스스로 그것을 지키시며, 영원히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당신의 은혜 안에 우리가 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