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베데스다 연못에 가시다. (예수님, 강력한 치유자임을 드러내시다) (요5:1~18)
@은혜의 집이라 이름붙여진 물웅덩이 주변.
수많은 각색의 병자들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웅덩이에 처음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전설인지 미신인지 모르는 소문을 따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각지에서 찾아온 병자들 무리입니다.
(그런데 그 물에 들어갔다 나온 후 병이 나았다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자리를 깔고 누운 38년된 병자를 보시고 모든 상황과 몸의 상태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는냐?"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함을 중얼거리듯 토로하는 그 병자에게 또 말하십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리고 그 병자는 그 능력의 말씀으로 인해 오랜기간 누워있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일까요?
그 사람은, "아무 희망없던 내게 기적을 베푼 당신은 대체 누구시요?" 라고 묻는 것도 까먹었네요.^^
그 38년 된 병자는 누구의 모습일까요?
죄로 인해 뒤틀리고 병들어버린 이 세상의 냉정한 현실속에서 막연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않으려
나름 몸부림치며 살아온 바로 제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우리를 건지셔서 치유코자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이제는 잘 듣고 화답해야하며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자주 듣고 마음에 담는 내용입니다.
#오늘 예배시간에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내내 예수님께서 율법의 수렁에 빠진, 장로들의 유전에 갇힌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말씀하시기를 원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몇가지 생각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설교중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요한복음에서의 지금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은)
첫째로, '예수님은 자신이 구원자, 강력한 치유자임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여러 명의 병자를 고치는 기적, 표적(sign)을 행하신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이 일은 본인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에게는 고침받은 병자보다 그를 고치신 이, 예수님께 더 포커스가 맞춰집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 나를 고치시는 분입니다."
둘째는, '유대인에게 명절과 안식일은 무엇인가?' 입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여기길래
모든 생명의 구원주로 오신 예수님조차도 반대하고 핍박하고 거스리는 원인이 되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전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굉장히 궁금했었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유대인들은 병자를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일은 새 생명을 주는 지극히 선한 일이었습니다.
병고침을 받은 그 사람에게도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그 병고침이 안식일에는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며,
치유자 예수님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자로 단정하고 정죄하는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당혹스런 대치상황이 여러분은 납득이 되시나요?
'유대인의 명절'과 '안식일', 그리고 '장로들의 유전(전통)'이라는 숨겨진 힌트를 밝혀야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상황을 잘 알면 성경의 내용이 정확하게 이해가 된다고 하네요.^^)
@<유대인의 명절과 안식일>
때에 맞게도!! 매일성경에서 얼마전 다룬 <레위기23장>에 보면 안식일과 절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안식일)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3절) -(유월절/무교절) 그 첫 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일곱째 날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7절) -(칠칠절)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21절) -(나팔절)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24~25절)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28절) 이는 너희가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아흐렛날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30~31절)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초실절을 제외한 모든 절기에는 안식일이 있었고, 안식일에는 '아무 일(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그럼 병 고치는 일도 그 '일'에 해당되는 것일까요? 성경 어느 곳에도 그 '일'이 어떤 것이라고 구분해 놓은 내용은 없습니다. 안식일에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해 놓은 곳은,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이 항상 읽고 묵상하며 아이들에게도 철저하게 가르친다는 장로들의 유전안에서입니다. @ <장로들의 유전(전통)> (아래 참고자료의 글을 꼭 읽어보십시오.) 처음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율법을 이제는 정말 잘 지켜보자는 간절한 목적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모든 실생활적인 면에 적용가능한 율법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오랜기간에 걸쳐서 했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오랜 시간동안 자자손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세분화하고 구체화된 장로들의 유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전들이 계속적으로 그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기준이 되어갔으며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이 되었습니다.
-(초실절)
-(속죄일)
이 날에 누구든지 어떤 일이라도 하는 자는 내가 그의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초막절)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35~36절)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39절)
이제 예수님께서 복음서 여러 곳에서 빈번히 언급하시며 항상 강한 어조로 책망하신, '장로들의 유전(전통)'에 대해 알아봐야겠습니다.
"왜 장로들의 전통(the tradition of the elders)을 범하느냐?" (마15:2,막7:3~5)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로 지적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구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리는구나" (막7:8)
예수님이 지적하신 유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유전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삼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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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장로들의 전통에 대한 언급)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마15:1~20, 막7:1~13)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마19:3~12)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요5:1~18)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막2:24,눅6:2, 마12:1~8)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눅6:7)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눅14:1)
(예수님께서 하신 답)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막2:27~28)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눅6:9)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마15:3)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눅14:3)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눅14:5)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12:5~8)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요7:19)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요7:22~24)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막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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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 하나님을 잘 섬기기위해 만든 규율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반대하고 핍박하고 거스리는 원인이 될 줄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봅니다.
그들은 기록된 성경을 원론적인 내용으로 삼고 그 원론을 실타래 풀 듯 잘 풀어서 세부적인 시행규칙을 만들고, 그 온갖 시행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야말로 기록된 원전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공인하는 체계(system)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전통과 계명, 역사속에서 바라본다면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입술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운운하면서도 그 계명보다는 인간적 전통을 중시하는 외식하는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하신적이 있는데,
그것은 겉모습은 그럴싸해 보여도 속은 썩었다는 것이고, 알맹이는 없고 형식만 남아있다는 말이지 않을까요?
또 진짜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것이 참된 생명의 교류, 정신, 원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알맹이를 담는 형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보화를 담는 그릇이 바로 우리들인 것처럼,
교회라는 유형의 껍질이 있기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무형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처럼 말입니다.(좀 어렵네요.)
그런데 알맹이를 추구하지 않고 형식에 안주하다보면(사실 이것이 눈에 명확히 보이기에 더 쉬운 길이지요),
우리의 삶의 모습에 유대인처럼 외식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유대인들은 <샬롬>으로서의 안식일의 의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본 상태로의 회복과 쉼>이라는 안식일의 정신은 이제 본인들과 전혀 상관 없다는 듯이, 그저 장로들이 정해놓은 규율이 하나님의 계명을 대신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런 이해에 기반할 때, 그들의 전통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반대하고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을, 바울 같은 정통유대인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였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복음서 여러 곳에 나타나있듯이,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과 언제나 대립하셨고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온통 얽매이게 하는 장로들의 유전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나라가 임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일겁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불치병을 고치시는 일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완전한 치유자로 오셨다는 것을 밝히시는 일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만드신 이유와 의미와 그 정신이 무엇인지를 생명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일이며,
왜곡되고 변질되고 그릇된 전통의 영향력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의 사고를 정면으로 깨뜨리는 일이셨다고 봅니다.
(살짝 흥분이 되네요.^^)
# 저 개인에게도, 또 우리교회안에도 전통과 관습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우선시되고 먼저 주장되어짐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사랑과 생명에의 구원과 상한 영혼들의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는것을 막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좋은게 좋은게 아니라 옳은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은 음미해볼만 합니다.
전통과 관습도 중요하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른 성경적 가르침에 충돌될 때는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갖기를 제게 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고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숨어있음을 깨닫고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상황속에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 말씀의 의미와 그 정신과 원리를 깨닫고 거기에 합당한 깊고 뚜렷한 발걸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하나님께 아뢰며 기도하는 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고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