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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무관한 믿음 or 현실을 무시하는 믿음(1)

강가딘777 2010. 9. 3. 12:56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된 수 많은 인물들 중에는 하나님께 쓰임받은 대표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첫 사람 아담 이후,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우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이 오시기를 예비한 '광야의 외치는 소리'인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각자 독특한 환경과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일들이 모두 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은혜롭고 감동적인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실에 대해 성경은 미화하거나 꾸미지 않고 적나라하게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특이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선 성경속에 나온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들 중에서 

그냥 건너뛰어 생략하고 싶은 내용, 삭제하고픈 내용, 다른 이들이 몰랐으면 하는 내용들이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냉정하게도 사람들의 위신이나 체면을 살려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결코 사람의 시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관점과 의도로 쓰여졌다는 단서가 될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았던 이 훌륭한 사람들이 행한 실수나 잘못, 심지어 악한 행동들까지도  

심각하게 주의하지 않고 지나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좋은게 좋다는 생각으로 어두운 면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거나,

이미 하나님께 쓰임받았으니 우리가 뭐라 할 수 없는 면죄부를 이미 받았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성공적이었던 내용만 가지고 그 인물을 바라봄으로써,

피치못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먼저, '이렇게 하니까 복을 받는구나. 우리고 그럼 이렇게 하자'는 의식입니다.

물론 이것은 옳은 생각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좋은 본을 따라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여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쳐 점점 극단화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복 받는 행동을 정형화시키고 그것이 복을 가져다 주는 공식으로 여깁니다. 삶의 모습속에서 도식화시켜버립니다.

(마치 복을 내려주는 자동판매기가 우리의 믿음 공식에는 있을 것 같은....) 

 

또 하나는, 한 인물의 극히 개인적이며 독특한 현실에 대한 깊고 진지한 이해와 성찰이 생략되는 것입니다.

이런 개별적인 상황들에 대해 그다지 주의하지 않다보니

현실의 삶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의 독특성과 개연성을 무시하는 데까지 이르고

결과적으론 실제적인 믿음이 공중에 붕 뜬 믿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작은 성도로서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몇해 전 어떤 사건을 통해서 일부 믿음의 리더들이 얼마나 피상적으로 성도를 이끌고 있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 극심한 개인적 어려움속에 처해있던 한 성도가 담당 목사님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속사정과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중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 후 그 성도는 교회 내에서 자신의 비밀스런 내용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성도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그 원인이 자신을 상담했던 목사의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공개적인 발언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 충격과 상처를 받은 그 성도는 그 목사님께 어떻게 그러실 수 있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은 태연하게 대꾸했습니다.

"아니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 해 아래 비밀은 없는 법이고, 자신이 비밀스런 일이라고 여기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다 겪은 것들이다.

그리고 현재 어렵다고 느끼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참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것으로 그 성도의 분노와 상처를 달래지는 못하였고 그 성도의 믿음은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있자니 마음이 씁쓸해졌습니다.

어떤 설교의 제목이 떠오르네요. "아픔을 모르는 성실은 성실이 아니다."

남의 아픔을 모르는 열심은 무엇을 가져올까요?

눈에 보여지게 일은 이루어지겠으나 그 일을 이루기 위해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은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한 개인의 독특한 현실에 대한 깊고 진지한 이해가 사라질 때, 런 개별적인 상황들에 대해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

그 때가 바로 우리에게는 은혜가 사라지는 때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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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믿음은 서로 분리되고 떼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믿음의 능력은 얼마든지 현실을 뛰어 넘을 수 있고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현실과 무관하게 놓여지거나 현실을 무시하게 될 때는,  

우리 믿음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쉽게 무너지고 산산히 부서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함, 그 자체일 것입니다. 

 

요즘처럼 잘 먹고 잘 자고 잘 사는 데 관심이 많은 적도 없었습니다. 가히 웰빙(Well-being)의 시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 주셨던 하나님...

그렇다고 현실의 복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 그 자체일까요?

물질의 풍요와 건강과 장수, 많은 소유나 자손의 번창, 높은 권력과 명예와 사회적인 존경이 복의 전부이고 끝입니까?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3-16)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11:33-38)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1:39-40)

 

 

 

지금 우리가 성경에서 보여주는 그 때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상상해봅시다.

무척이나 혹독하거나 거칠었을 환경속에서도 성경의 인물들은 어떻게 그 믿음을 지켰는지,

그리고 그 현실을 몸으로 겪으며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깊이 살펴보지 않고

그저 귀에 듣기 좋은 '꿀 발린' 말만 늘여놓는다면 어쩌면 모든 것이 '뜬 구름 잡는 이야기'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