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시10:1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사람들을 겪으면 겪을수록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동일한 일에 함께 하고 있어도 각자의 생각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과정속에서 알게됩니다.
행동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조금은 곤욕스런 순간들이 지나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을 갖고 어떤 일에 임하기 위해서는 사전작업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의 원하시는 뜻을 묻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속깊은 대화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그 일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만을 짜려고 다들 시쿵둥하게 않아있는 것은 제겐 언제나 고역입니다.--
그 일에 대한 의미와 목적에 대한 설명을 통해 마음을 모으고 가슴에 불을 지펴주는 영적 민감함은 어디로 갔을까요?
성도들의 믿음의 행함이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아니 행함을 통해 본인의 신앙의 견고함을 증명하는 것 같은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흐르는 시간이 그들을 어떤 믿음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하는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우리는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이 변화되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시간의 연단속에서 성품과 인격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지요.
그런데 저의 이런 말뜻을 오해하는 것 같이 여겨지니 정말 답답합니다.
제가 이렇게 반복해 이야기하는 것을, 자기의 필요에 따른 개인적인 요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떤 부분에 대한 의견을 말해도 진지한 피드백이 되지 않습니다.
반응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런 분위기속에서 계속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은 참 지치는 일이네요.
하나님.
제 답답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하고 있다면 제 생각을 바꿔주시길 원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끝까지 인내하게 하시고
스스로를 긍휼히 여기듯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울러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함이 없다고 말할까 걱정되오니
함께 하는 봉사의 시간을 더 많이 갖게되기를 바라옵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