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목사에 대한 단상(斷想) 1
전병욱목사에 대한 단상(斷想) 1
그를 처음 안 것은 수 년전 마을 도서관에서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 - 그의 많은 책들 중 하나입니다.
우연처럼 고른 그 책을 단번에 읽으며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 후 그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설교를 접하면서 지금은 거의 모든 설교를 듣는 애청자가 되었습니다.
자청하여 인터넷성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말 제가 이럴줄^^ 몰랐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운전하는 시간이나 밤에 잠을 청하기 전에도 엠피쓰리로 그 말씀들을 들을 정도입니다.
그 전에 두루두루 들었던 여러 목사님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요즘은 전목사님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설교조회수를 살펴보면 많은 분들이 저처럼 인터넷설교를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분의 설교는 분명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편집증 같은 선택과 집중이 많은 폐해를 가져다 줍니다.
먼저, 목회자들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전통적인 - 그의 설교에도 자주 등장하는 '홀리 보이스'나 작위적인듯 보이는 경건한 행동양식같은 과거 목회자들의 정형적인 외적 행태의- 모습에 완전히 거부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내용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현실적이며 시대반영적인 표현에 대한 울림으로 인해, 다른 분의 설교를 들을 때에 큰 반향을 줍니다.
복음주의 정신을 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이름뿐인 복음주의 설교나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논지를 견지하는 흐릿한 교리적인 설교에는 이제는 마음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개 평신도가 이런 주제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하고 도에 지나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바른 믿음에 대한 많은 씨름들을 해가고 있는 저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함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말씀을 이루기 원합니다.
또한 개인에 대한 찬사나 편들기를 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음이 있다면 선한 뜻으로 여겨주시고, 올바르지 못한 표현이나 주장은 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전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생각나는 느낌을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소통의 언어를 사용하다
그의 설교를 듣다보면 작위적인 모든 것이나 형식적인 것에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을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느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벼움을 지나 경박스러울 때가 있다고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강한 어휘를 많이 사용함으로 인격안에 있는 독소가 품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형용사처럼 사용하는 '거지같은', '파워', '승리', '성공', '대가', '탁월한', '강력한', '죽여버려', 이런 단어들 말입니다.
사용된 단어들은 강렬한 느낌과 함께 왠지 독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의 표현된 말로써는 결코 따뜻하고 온화하며 부드럽고 은혜로운 인격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청년들을 향한 선동적^^ 외침을 통하여 흐릿하고 분불명한 삶의 방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생각없이 살던 삶을 목표가 뚜렷한 삶으로 강화시켜 결국 전인적인 삶의 변혁를 원하는 그의 뜨거운 마음이 언제나 느껴집니다.
-거룩한 야성(행동력)을 심다
처음에는 너무나 현실적이여서 독특하며 이질적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마치 승리에 대한 찬가를 부르는 모습은 성공신학의 아류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는 그의 노력은 실로 감탄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에 대한 다독을 통하여 응집된 결과물을 하나님께 집중시키는 그의 노력은 실로 대단하고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그 내용속에 있었던 행적들을 은연 중 좇아가게 되는데, 그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보게 됩니다.
그 설교는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만 하는 도덕적, 윤리적 설교를 자제해야 한다는 무언의 암시를 지속적으로 보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찌보면 가볍고 경박스럽고 깊이없어 보이는 그의 설교^^, 소위 말하는 '영적'이지 못한 것 같은-.
그러나 한편으론 이 시대의 무기력하며 무능력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성도로서의 믿음의 삶을 굵고 단순하게 제시하여,
현실속 심각한 부조리를 벗어나는 솔직하고 균형잡힌 실천적 대안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현실의 나를 직면하게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뭔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동기를 부여하고 조금씩 조금씩 꿈틀거리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수 년간 빠져있었던 혼란스러운 믿음과 그에 따른 현실회피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생기, 생명을 느끼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있음을 자신있게 긍정하는 성도들이 몇명이나 될까요?
그의 설교는 우리들 삶의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믿음의 생활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봅니다.
살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 삶속에서 진정한 믿음생활은 무엇입니까?
그의 설교의 감성은 듣는 이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심으려 노력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사실 그의 숨겨진 의도는 '내가 줄반장되어 앞서 나갈테니 나를 따라오세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저서의 제목에도 포함되어 있는 돌파력, 집중력, 잠재력 등 힘에 대한 표현은 단지 세속적 힘에 대한 예찬이 아닌,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진정한 힘-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 에 대한 간절한 바램이 아닐까요...
-드라마에 빠진 목사는 거룩함이 결여되어 있을까?
참 특이한 목회자의 전형입니다.
드라마, 개그프로그램, 스포츠, 영화, 소설, 다양한 주제의 책 등 시대문화에 대한 전방위적 접촉이 이루어집니다.
경건함을 위하여 TV를 멀리하라는 가르침속에 있었던 저에게는 혼란스러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세속과 거룩의 구분을 이분법적으로 교육받아왔던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요?
거룩함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가치관의 획기적인 전환이 그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어느 순간, 어느 위치에서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어도 그것을 전혀 모른체
그저 열심히 부지런히만 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누림과 그 선한 접근은 이 성경말씀을 이루기 위함일까요?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
-즐겁게 사는 것을 보여주다
사는 것,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인생의 숙제입니다.
그의 가벼운 설교조차도 항상 뒤끝에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모든 것을 열어놓고 좀 더 폭넓게 생각하게 하며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긍극적인 질문에 나를 던져넣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산다는 것, 그것은 어떤 것일까?'
그러면서 그는 자전거를 탑니다. 죽을 둥 살 둥 타면서 몸뚱이의 한계와 인내를 시험해보려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는 웃습니다. 그 모습에서 건강함의 내음이 물씬 풍겨옵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목회자들은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하나 이상의 건강한 취미생활이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얻는 건강함과 너그러움과 풍요로움이 성도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우려내다
똑같은 말씀을 반복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은 희한하게도 들으면 들을수록 말씀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깊은 뜻들과 새로운 깨달음들이 발견되듯이,
그 설교에서도 많은 의미들과 영감과 인사이트들이 번쩍이며 드러납니다.
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문득 드는 생각이, 모든 말씀이 성경의 숨겨진 의미에서 나오며,
믿음의 선배들의 깊은 묵상과 삶의 체험속에서 나온 신앙원리들이 그 말씀의 재료가 되기 때문임을,
또 그런 경건서적의 요약된 말씀이며 그 적용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됩니다.
똑같은 설교를 가만히 또 한번 들어보시기를 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