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란 말 좀 쓰지마요~
<평신도라는 말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평신도 하면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목사님이 쓴 '평신도를 깨운다'는 책이 생각난다. 교계에서 '평신도'란 단어는 무척이나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평신도 목회, 평신도 교회, 평신도 신학, 평신도 사역, 평신도를 위한 쉬운 성경 등등..
평신도란 말은 평신도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 평신도는 일반적인 보통의 성도를 지칭하지만, 여기에 속한 사람을 비하하고 낮춰 보는 느낌을 담고 있다.
즉 평신도는 믿음은 있지만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고 성경과 신학 지식에 무지하며 스스로는 신앙을 지키지 못하는 부류를 칭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그런 무례하고 편협된 시선으로부터 '병신도'라는 괴이한 표현이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이다.
<성직주의와 주의 종>
다수를 이루는 평신도의 대척점은 소수의 성직자다. 개신교의 성직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공인받은 개신교의 목사, 전도사 등의 사역자 그룹을 말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주의 종'으로 부른다. 평신도와 구별된 특별한 존재임을 스스로 공표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기름부음을 받은 거룩한 직책을 가진 하늘로부터 선택된 존재라는 자의식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그중 교회의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교회에 사실상 무소불위( 못할 일이 없이 다함)의 권위를 가지고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독보적인 성직자로서의 존재감을 널리 과시한다. 교회의 치리와 가르침을 거의 독점하는 최상의 리더일뿐 아니라, 모든 행정과 재정과 사업에 있어서 최고의 의결권을 가진 끝판왕 오너이자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성경이 말하는 직분과 사역>
그런데 성경에는 직분(사역)을 구분하지만 결코 분리시키지 않는다. 사역의 구분은 합당한 질서를 위함이지만 서열을 부여해 차별화를 꾀하지 않는다. 직분에는 타당한 권위가 있지만 위계를 통해 등급을 나누고 계급화를 조장하지 않는다.
교회 직분의 역사는 초대교회의 사도에서 교부로, 가톨릭의 교황 추기경 신부로, 개신교의 목사 감독 등 끊임없이 조직화되고 형식화되어 전통으로 이어졌다. 질서를 위한 권위가 서열을 가져왔고,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분이 위계를 통해 계급화되었고 전통적 조직의 틀을 강고하게 형성해왔다.
<평신도라는 말은 예수님이 가져온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신약교회의 직분과 사역은 성령의 은사로부터 주어졌다. 그것은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성령의 선택으로 생겨난다. 그러므로 이 직분과 사역들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온전하게 하게 위한 목적을 위함이다.
신약교회에서는 명시적으로 장로, 감독, 집사라는 직분에 있었다. 이들은 교회에서 중요한 직책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특별한 뭔가를 가진 사람들이란 말은 아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동일한 성도다. 성도는 본질적으로 성직자와 평신도로 나눌 수 없다. 주어진 직분과 사역은 단지 기능과 역할이 다를 뿐이다. 존재의 형질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사람의 연약함은 자꾸 자기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지나친 열심으로 드러난다.
평신도란 말을 쓰지 말고 (일반)성도로 부르자. 단지 호칭인데 어떤 문제로 여기는 것은 억측이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그 호칭에는 건전하지 못한 의미가 숨어있다. 이는 알지 못하게 교회의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이를 경계한다는 측면에서 나쁠 것이 없다. 자기 중심성에서 오는 자랑과 교만을 십자가 아래에 조용히 내려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