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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18)
강가딘777
2021. 8. 17. 16:14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사람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예언자들은 어떤 영적인 특별한 힘으로 예언의 말을 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그 상황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뿐이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와 함께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꼽히는 엘리야도 마찬가지다. 북이스라엘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시기, 그동안의 모든 왕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을 행했던 아합이 통치하는 때에 예언자 엘리야는 홀연히 나타났다.
" 내가 다시 언급할 때까지 수년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따랐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가지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요단강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낼 때 까마귀를 통해 빵과 고기를 공급받았다. 시돈 사르밧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계속 떨어지지 않았다. 과부의 아들이 죽자 간청의 기도끝에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
3년후 엘리야는 아합을 만나 갈멜산에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바알예언자 450명 아세라예언자 400명와 담판을 짓게 되었다. 마침내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떨어지고 이방신의 예언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비가 내렸다. 엘리야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고무되어 온 몸에 힘이 넘쳐났다.
주님의 능력이 엘리야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엘리야는 허리를 동여 매고, 아합을 앞질러서, 이스르엘 어귀에까지 달려갔다. (왕상18:46, 새번역)
이스라엘의 왕정 이후 계속해서 하나님의 분노를 불러온 고질적인 우상숭배를 이 놀랍도록 인상적인 사건을 통해 속시원하게 정리해버렸다. 아마도 이 일은 이때 모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뇌리에 평생 각인되었을 것이고, 이후 세대에게도 두고 두고 회자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이어진다. 이전에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학살한 전력이 있는 아합의 처 이세벨에겐 이 일이 오히려 극렬한 적개심만 불러왔다. "내일까지 내가 엘리야를 죽이지 못하면 천벌을 달게 받겠다."
이런 엄청난 일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뉘우침이 그래도 정상적이지 않을까? 최소한 이일에 대해 당분간 노심초사하고 두문불출 하는게 인지상정일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이세벨은 참 놀랍다. 양심에 화인맞은 아무런 감정없는 진정 악의 화신이다.
엘리야는 어쩌면 미리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이제 되었다. 이 정도면 아합과 이세벨이 정신 차리겠지.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돌아오겠지.'
그러나 엘리야는 이세벨의 독기어린 반응에서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왕상19:3-4, 새번역)
또다시 반전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의기양양했을 천하의 엘리야가 잡혀 죽을까 무서워 꽁무니가 빠지게 급히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이스라엘 남쪽 끝 광야에 들어가 죽기를 원하는 찌질한 그 모습에는 담대하게 아합을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갈멜산에서 엄청난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왕상19:9, 새번역)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9)
*****
하나님은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엘리야에게 물으신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의 직접적인 경험자요 목격자이다. 그런 엘리야가 이세벨의 살해위협에 두려움을 느껴 차라리 스스로 죽겠다고 하는 이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동안의 엘리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살펴보자면 이후의 요나선지자가 떠오른다. 요나선지자는 이방나라의 수도인 니느웨성에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다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니느웨성에 성의없이 하나님의 심판말씀을 전하고서 높은 곳에 올라가 니느웨성이 멸망하는 것을 보려고 했다.
요나는 이방땅인 니느웨성이 반드시 멸망당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회개하고 악에서 돌이키면 멸망당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가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위대한 승리 후에 이제는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겠다는 개인적인 희망울 갖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놀라운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데 악한 왕과 왕비가 무슨 상대가 되리요.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이세벨은 자신을 목숨걸고 죽이리라고 더욱 기세등등했다.
엘리야는 자신의 희망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모든 의욕이 상실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를 계기로 하나님은 엘리야 다음의 섭리를 준비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음식을 먹게 하고 기운을 차리게 해 차기 아람 왕과 북이스라엘 왕과 엘리야의 후계자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다.
구약성경에서 모세와 함께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꼽히는 엘리야도 마찬가지다. 북이스라엘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시기, 그동안의 모든 왕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을 행했던 아합이 통치하는 때에 예언자 엘리야는 홀연히 나타났다.
" 내가 다시 언급할 때까지 수년간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따랐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가지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요단강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낼 때 까마귀를 통해 빵과 고기를 공급받았다. 시돈 사르밧 과부의 집에 밀가루와 기름이 계속 떨어지지 않았다. 과부의 아들이 죽자 간청의 기도끝에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
3년후 엘리야는 아합을 만나 갈멜산에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바알예언자 450명 아세라예언자 400명와 담판을 짓게 되었다. 마침내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떨어지고 이방신의 예언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비가 내렸다. 엘리야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고무되어 온 몸에 힘이 넘쳐났다.
주님의 능력이 엘리야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엘리야는 허리를 동여 매고, 아합을 앞질러서, 이스르엘 어귀에까지 달려갔다. (왕상18:46, 새번역)
이스라엘의 왕정 이후 계속해서 하나님의 분노를 불러온 고질적인 우상숭배를 이 놀랍도록 인상적인 사건을 통해 속시원하게 정리해버렸다. 아마도 이 일은 이때 모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뇌리에 평생 각인되었을 것이고, 이후 세대에게도 두고 두고 회자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이어진다. 이전에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학살한 전력이 있는 아합의 처 이세벨에겐 이 일이 오히려 극렬한 적개심만 불러왔다. "내일까지 내가 엘리야를 죽이지 못하면 천벌을 달게 받겠다."
이런 엄청난 일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뉘우침이 그래도 정상적이지 않을까? 최소한 이일에 대해 당분간 노심초사하고 두문불출 하는게 인지상정일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이세벨은 참 놀랍다. 양심에 화인맞은 아무런 감정없는 진정 악의 화신이다.
엘리야는 어쩌면 미리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이제 되었다. 이 정도면 아합과 이세벨이 정신 차리겠지.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돌아오겠지.'
그러나 엘리야는 이세벨의 독기어린 반응에서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왕상19:3-4, 새번역)
또다시 반전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의기양양했을 천하의 엘리야가 잡혀 죽을까 무서워 꽁무니가 빠지게 급히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이스라엘 남쪽 끝 광야에 들어가 죽기를 원하는 찌질한 그 모습에는 담대하게 아합을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갈멜산에서 엄청난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왕상19:9, 새번역)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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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엘리야에게 물으신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의 직접적인 경험자요 목격자이다. 그런 엘리야가 이세벨의 살해위협에 두려움을 느껴 차라리 스스로 죽겠다고 하는 이 행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동안의 엘리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살펴보자면 이후의 요나선지자가 떠오른다. 요나선지자는 이방나라의 수도인 니느웨성에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다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니느웨성에 성의없이 하나님의 심판말씀을 전하고서 높은 곳에 올라가 니느웨성이 멸망하는 것을 보려고 했다.
요나는 이방땅인 니느웨성이 반드시 멸망당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회개하고 악에서 돌이키면 멸망당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가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스럽게 붙잡고 있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위대한 승리 후에 이제는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겠다는 개인적인 희망울 갖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 이처럼 놀라운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데 악한 왕과 왕비가 무슨 상대가 되리요.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이세벨은 자신을 목숨걸고 죽이리라고 더욱 기세등등했다.
엘리야는 자신의 희망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모든 의욕이 상실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를 계기로 하나님은 엘리야 다음의 섭리를 준비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음식을 먹게 하고 기운을 차리게 해 차기 아람 왕과 북이스라엘 왕과 엘리야의 후계자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