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왕의 식탁에 함께 하는 은혜
강가딘777
2021. 5. 30. 21:10
왕의 식탁에 함께 하는 은혜
(삼하9:1~13)
2021.5.30.주일
설교)
몰락한 왕가의 후예 므비보셋은 권력재편의 와중에 스스로 몸을 낮춘다. 사울의 핏줄임에도 사을왕가의 유업을 주장하지도 못한다. 다윗앞에 선 전 왕가의 시종은 '다리저는 자'로 므비보셋을 부른다. 당시의 지체장애자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기에 므비보셋은 시종에게서도 아주 낮은 취급을 받았다. 므비보셋조차도 ' 죽은 개 같은 나' 라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개는 유대인들에게 아주 멀리해야 할 동물이며 죽은 사체는 성결을 심각하게 해치는 것이다.
므비보셋은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우리는 죄 많은 아담의 핏줄이다. 영혼의 자유를 잃고 사단의 정죄를 받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 사람들이다. 일생에 죄의 종노릇을 하고 살아간다. 죄의식과 열등감,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고개 숙이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항상 왕의 식탁에 함께 하는 은혜가 므비보셋에게 임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영광의 식탁은 무한의 능력으로 확대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함께 먹으신다. 함께 먹음은 천국을 보여준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늘보좌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 되셨다. 그가 우리를 저주받은 운명에서 건져내 주셨다. 그 왕의 식탁으로 우리를 초대하셨다. 그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살게 하셨다. '매일 매끼 함께 먹고 마시자' 예수님은 병자와 약자들과 함께 먹으셨다. 주님은 죽은 개같은 운명의 므비보셋들과 함께 하신다. 우리 영혼이 그 은혜를 누리자.
k)
이제 드디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 그에게 경제적 안정을 마련해주고 다윗의 왕자들처럼 매번 왕과 함께 식사하는 영예를 부여한다.
(마치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제들과의 마지막 감정을 풀고 그들의 아들들을 자기의 자식처럼 키우겠다고 약속했던 장면이 떠오르게 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함께 전사했다. 생전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생명을 사랑함같이 사랑했는데(삼상20:17) 이는 기이하고 놀라운 행동이었다. 다윗은 그런 요나단에게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내 자손과 네 자손사이에 계시리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다.(삼상20:42)
어려서 불행한 일로 두 다리를 절게 된 요나단의 혈육 므비보셋은 다윗과 요나단의 이 맹세로 인해 다윗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불세출의 용사요 예술가요 시인이며 탁월한 리더, 하나님의 기름부름받은 자로 오래 전 왕으로 선택받은 다윗이었지만, 그가 왕이 되기 전엔 꽉막힌 환경속에서 비참하고 억울할뻔한 세월이었다.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은 정치적 라이벌이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울로 인함이었다. 대적의 아들인 요나단과의 순전한 우정은 계속된 생명의 위협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큰 위로와 피할 길이 되었다.
하나님이 보장한 미래였건만 다윗의 현실은 오랫동안 불투명했다. 그런 다윗에게 요나단의 사랑은 다윗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인내를 북돋아주었다.
다윗은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보며 매일 요나단을 기억했을 것이다.
cf.내 상에서 더불어 먹으리라...예수님생각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눅22:3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교훈) 본문은 므비보셋을 통해 요나단을 보게하고,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를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깊은 통찰을 준다.
- 하나님은 원수의 아들을 통해서도 사랑을 베푸신다.
- 하나님의 약속(왕좌에 오름)은 긴 기다림과 인내를 요구한다.
- 다윗은 요나단을 통해 받은 사랑과 은혜를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흘려보냄으로 맹세를 성취했다.
- 다윗의 믿음을 다시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이라는 극찬을 받은 근거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기름부은 왕으로 영광스러운 직책을 받았지만, 자신의 힘으로 그 자리를 강제적으로 차지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렸다.
cf. 다윗과 므비보셋의 관계는 압살롬의 반란때 종 시바의 거짓말로 한바탕 요동친다.(삼하16장, 19장) 다윗의 이야기는 언제나 예수님에 대한 예표성을 띤다. 그러기에 본문의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구속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문맥을 무시한 지나친 비약과 단편적 적용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문맥적 이해가 기초가 될 때 얼마나 더 풍성하고 놀라운 하나님을 만나게 될까 생각해본다.
(삼하9:1~13)
2021.5.30.주일
설교)
몰락한 왕가의 후예 므비보셋은 권력재편의 와중에 스스로 몸을 낮춘다. 사울의 핏줄임에도 사을왕가의 유업을 주장하지도 못한다. 다윗앞에 선 전 왕가의 시종은 '다리저는 자'로 므비보셋을 부른다. 당시의 지체장애자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기에 므비보셋은 시종에게서도 아주 낮은 취급을 받았다. 므비보셋조차도 ' 죽은 개 같은 나' 라고 스스로를 표현한다. 개는 유대인들에게 아주 멀리해야 할 동물이며 죽은 사체는 성결을 심각하게 해치는 것이다.
므비보셋은 우리 인생의 모습이다. 우리는 죄 많은 아담의 핏줄이다. 영혼의 자유를 잃고 사단의 정죄를 받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 사람들이다. 일생에 죄의 종노릇을 하고 살아간다. 죄의식과 열등감,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고개 숙이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항상 왕의 식탁에 함께 하는 은혜가 므비보셋에게 임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영광의 식탁은 무한의 능력으로 확대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함께 먹으신다. 함께 먹음은 천국을 보여준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늘보좌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왕이 되셨다. 그가 우리를 저주받은 운명에서 건져내 주셨다. 그 왕의 식탁으로 우리를 초대하셨다. 그 은혜와 사랑을 누리며 살게 하셨다. '매일 매끼 함께 먹고 마시자' 예수님은 병자와 약자들과 함께 먹으셨다. 주님은 죽은 개같은 운명의 므비보셋들과 함께 하신다. 우리 영혼이 그 은혜를 누리자.
k)
이제 드디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 그에게 경제적 안정을 마련해주고 다윗의 왕자들처럼 매번 왕과 함께 식사하는 영예를 부여한다.
(마치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제들과의 마지막 감정을 풀고 그들의 아들들을 자기의 자식처럼 키우겠다고 약속했던 장면이 떠오르게 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함께 전사했다. 생전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생명을 사랑함같이 사랑했는데(삼상20:17) 이는 기이하고 놀라운 행동이었다. 다윗은 그런 요나단에게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내 자손과 네 자손사이에 계시리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다.(삼상20:42)
어려서 불행한 일로 두 다리를 절게 된 요나단의 혈육 므비보셋은 다윗과 요나단의 이 맹세로 인해 다윗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불세출의 용사요 예술가요 시인이며 탁월한 리더, 하나님의 기름부름받은 자로 오래 전 왕으로 선택받은 다윗이었지만, 그가 왕이 되기 전엔 꽉막힌 환경속에서 비참하고 억울할뻔한 세월이었다.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은 정치적 라이벌이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울로 인함이었다. 대적의 아들인 요나단과의 순전한 우정은 계속된 생명의 위협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큰 위로와 피할 길이 되었다.
하나님이 보장한 미래였건만 다윗의 현실은 오랫동안 불투명했다. 그런 다윗에게 요나단의 사랑은 다윗에게 힘과 용기, 그리고 인내를 북돋아주었다.
다윗은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보며 매일 요나단을 기억했을 것이다.
cf.내 상에서 더불어 먹으리라...예수님생각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눅22:3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교훈) 본문은 므비보셋을 통해 요나단을 보게하고,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를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깊은 통찰을 준다.
- 하나님은 원수의 아들을 통해서도 사랑을 베푸신다.
- 하나님의 약속(왕좌에 오름)은 긴 기다림과 인내를 요구한다.
- 다윗은 요나단을 통해 받은 사랑과 은혜를 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흘려보냄으로 맹세를 성취했다.
- 다윗의 믿음을 다시 보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이라는 극찬을 받은 근거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기름부은 왕으로 영광스러운 직책을 받았지만, 자신의 힘으로 그 자리를 강제적으로 차지하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렸다.
cf. 다윗과 므비보셋의 관계는 압살롬의 반란때 종 시바의 거짓말로 한바탕 요동친다.(삼하16장, 19장) 다윗의 이야기는 언제나 예수님에 대한 예표성을 띤다. 그러기에 본문의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구속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은 부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문맥을 무시한 지나친 비약과 단편적 적용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문맥적 이해가 기초가 될 때 얼마나 더 풍성하고 놀라운 하나님을 만나게 될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