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의 설교
팀 켈러의 설교 /두란노
프롤로그. 좋은 설교란 무엇인가?
PART 1. 말씀을 섬기는 설교
설교자는 성경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1. 성경말씀을 설교하라 - 전체 성경의 맥락 안에서 강해설교를 하라
Chapter 2. 매번 복음을 설교하라 - 복음을 설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다
Chapter 3.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 본문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설교하는 여섯 가지 실천법
PART 2.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설교
설교자는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4. 몸담고 있는 문화를 향해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 주위 문화와 공명하면서 저항하라
Chapter 5. 시대정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 예수님때부터 현대의 저변을 흐르는 문화 내러티브 검증하기
Chapter 6. 마음에 닿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 설교의 상황화가 이뤄지면 청중이 변한다
PART 3. 성령을 덧입은 설교
설교자는 삶과 인격에 성령이 오셔야 한다
Chapter 7. 설교가 들리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 설교보다 설교자로서의 삶을 더욱 힘써 준비하라
<프롤로그> 좋은 설교란 무엇인가?
위대한 설교?
비결은 하나님의 지혜로운 계획의 심연에, 또 하나님의 영의 능력에 있다. 깊고 풍성한 기도생활은 위대한 설교와 좋은 설교를 위한 필수 요소지만, 그 자체로 설교의 위대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건강한 설교는 사랑에서 나온다
설교가 염두해 두어야 할 두 가지 근본대상은 ‘성경말씀’과 ‘듣는 사람’이다. 건강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사랑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다.
그리스도를 설교하라(고전 1:18-2:5)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설교자의 능력이다. 이것이 단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설교를 전하는 길이다.
설교는 단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을 ‘보여주고’ 그 분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으로 ‘그 분을 계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성령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심장부를 향해 설교하라(고전 1:21-24)
성경본문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설교자는 성경 메시지와 그 문화의 근본 신념들(그 안에 속한 사람들 눈에는 잘 안보인다)을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그들이 자신을 보다 더 정확히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바울처럼 우리도 그들의 문화적 열망을 매개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사로잡음으로써, 마침내 그들이 진정한 지혜와 의로움, 또한 참된 능력과 아름다움이신 그리스도께 오도록 초청해야만 한다.
설교의 과업들
좋은 설교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것"이다.(고전2:1) 권위 있는 본문을 지혜롭게 다루어 성경적으로 설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설교자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벧전4:11)을 설교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본문의 의미를 그 문맥 안에서 선명하게 전해야 한다. 역사적인 배경과 전체 성경의 맥락안에 말씀을 섬기는 이 과업이 ‘강해’다. 단락의 메시지를 이끌어내되 나머지 성경 전체의 가르침의 조망 안에서 신실하고 또 통찰력있게 도출하여, “성경 한 부분을 설명할 때 다른 부분과 괴리되지 않도록”하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고전1:24) 모두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강력하게 설교하고, 문화에 참여하며,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단지 지성에 정보를 던지는 게 아니라 듣는 이의 관심과 상상을 사로잡고 그들로 하여금 회개와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좋은 설교는 의지의 변죽을 두들기는 몽둥이가 아니라, 가슴을 파고드는 칼과 같다.(행2:37) 최상의 설교는 우리의 근본을 파고들어서, 우리 스스로를 우리 앞에 드러내고 분석해낸다.(히4:12) 그것은 성경 강해 위에서 세워져야 한다.
사람들이 성경 본문이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임하는지를 보기 전까지는 그 본문을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게끔 돕는 것이 이른바 '적용' 작업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마음을 향한 설교와 문화를 향한 설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문화 내러티브가 각 개인의 정체성과 양심, 실재를 이해하는 것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설교에서의 문화참여(설교안에 각 문화의 특성을 담아내고, 설교 메시지를 각 문화 특성에 맞게 조율하고 연결하는 것)를 ‘타당하게’ 보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삶의 근본을 발가벗기기 위함이어야 한다.
설교할 때 두 가지 책임을 지니는데, 첫째는 진리에 대한 것이고,둘째는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진리를 그들의 마음에 와닿게, 그들의 가장 수용적으로 듣게, 그러면서도 불필요한 상처를 피하게끔 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설교의 두가지 과업이라면, 이 둘을 완수하기 위한 하나의 열쇠가 있다. 바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정확성과 그리스도 중심성은 바울에게 동일한 것임을 기억하라. 어떤 본문을 설교하든 그것의 주제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성취됨을 보여 주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본문을 제대로 설교할 수 없다.
우리에게 두가지 과업이 있다. 설교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섬기고 사랑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해야 한다.
매시간 성경 본문을 선명하게 설교하고 매시간 복음을 설교함으로써, 우리는 말씀을 섬긴다. 또한 우리는 문화와 마음을 향해 설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고전2:4)으로 듣는 이들이 말씀을 깨닫도록 해주신다. 진정한 성령의 능력을 품은 설교는, 설교자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품을 수 있는 살아있는 실체'로 제시할 때만 가능하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영광을 향한 경이를 품고 설교한다는 뜻이다.
PART 1. 말씀을 섬기는 설교
설교자는 성경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1. 성경말씀을 설교하라
전체 성경의 맥락 안에서 강해설교를 하라
강해설교와 주제설교,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모든 강해설교는 부분적으로는 주제설교다. 주제설교도 성경에 충실한 설교라면 필시 이런저런 다양한 본문에 대한 '미니강해로 구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주제를 완성하기 위해 도입되는 단락은 그 자체의 문맥안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강해설교는 메시지를 성경 본문에 기초해 도출한다. 설교의 요지는 셩경 본문 안에 있는 요지들이고, 본문의 주요 사상들을 다룬다.
강해설교는 본문해석을 나머지 성경의 교리적인 진리에(조직신학에 민감하게) 조율시키다. 또한 단락을 성경 전체 내러티브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어떻게 그리스도가 본문 주제의 궁극적인 성취가 되는 지를 보여준다.
♤♤강해설교, 교회의 대표 식단이 되게 하라
1. 강해설교는 성경 전체가 진리라는 확신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최선의 방편이다.
성경에 대한 이해와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대한 확신이 깊고 포괄적이지 않으면, 성경을 확신있게 이해하고 제시하는 일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신의 결핍은 공적인 가르침에도 묻어나서 말씀의 칼끝을 무디게 할 것이며, 결국 선포와 경고와 초청 대신 나눔과 사색, 추론 등으로 시간을 채우게 될 것이다.
성경에 대한 적절한 확신을 굳게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은, 성경이 성경 자체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시편 119편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분석으로 시작하라. 성경의 성격과 우리 삶에서의 역할과 활용에 대하여 말하는 바를 모두 추출하라. 우리가 성경언어의 의미를 드러낼 때. 하나님은 우리 삶에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강해설교는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권위 있고, 살아 있고, 활력 있는 말씀으로 믿는 우리 신념을 촉발시키고 표현한다.
2. 권위가 말하는 이의 의견이나 추론이 아니라 성경 본문 자체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 안에 있는 있음을 보다 쉽게 인식하게 하기 때문이다.
3. 교회 공동체를 향해 하나님이 친히 어젠다(주제,논제)를 놓으시게 한다.
4. 성경 본문이 설교자의 어젠다를 내려놓도록 한다.
5. 청중이 스스로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한 단락을 어떻게 숙고하고 의미를 발굴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6. 성경의 주된 주제인 예수 복음을 더욱 선명하게 보도록 인도한다.
피해야 할 위험들
강해설교를 엄격하게 정의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강해 설교자들은 본문의 주요 사상들을 반드시 섭렵하여, 지엽적인 세부 정보나 곁가지에 함몰된 나머지 성경 저자의 의도를 잘못 전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한다.
과연 이 시대에도 효과적일까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가장 선명하고 생생하게 사람들 앞에 노출시키는 데 힘을 쏟으라.(찰스 스펄젼) 말씀의 특별한 능력과 권위가 드러날 것이다. 심지어 가장 반권위적인 분위기속에서도, 가장 회의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말이다.
Chapter 2. 매번 복음을 설교하라
복음을 설교하는 건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다
성경 전체의 메시지
구약의 메시지는,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그것도 오직 여호와께만 속했다'라는 것이다.(욘2:9) 신약에서 우리는 그 구원이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나오는지를 발견한다.(눅24:44~45)
어떤 본문이 전체 정경 문맥 안에서 가지는 의미를 보여준다는 것은, 그 본문이 전체 성경의 중심사상인 그리스도와 구원의 복음을 어떻게 가르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의 두 적,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
복음과 삶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인 공식은 이와 같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이 믿음은 계속 그 상태인 체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진정한 구원은 항상 선행과 변화된 삶으로 귀결된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이래, 성경적인 복음과 그 능력을 놓쳐버리게 만드는 두 가지 상반된 오해나 오류가 지적되었다.
율법주의와 반율법주의는 표현만 다를 뿐 둘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거부한다.
율법주의 : 비판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고 거칠고, 지나치게 예민하며, 깊은 불안감과 다른 이들을 향한 시기심으로 이끈다.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무조건적인 은혜에 뿌리박고 기초하는 게 아니라 자기 행위와 평가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 율법주의 : 하나님이 내 공로와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도덕적으로 살든 비도덕적으로 살든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신다는 사상
요 14: 21-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계 3:20-21)를 그와 함께 하리라”(23절)
복음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구원을 쟁취하는 율법적 수단’에서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사랑의 반응’으로 변혁시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은 복음의 은혜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스스로 무한 비용을 감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분을 알고 닮아가며 기뻐하고 사랑하는 통로가 된다.
율법주의자 반 율법주의자 모두에게, 율법에 대한 순종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는 길이지, 그 분을 닮아가고, 그 분을 알고, 기뻐하고, 그 분 자체로 인해(선하시며, 인자하시며,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 그 분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다.
율법주의자와 반율법주의자에 대한 처방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해하고 맛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향한 새로운 사랑과 순종으로 이끈다.
매번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은 성경이 어떻게 서로 맞아 들어가는 지를 보여주는 길이다. 어떤 설교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만 보여주고 그 원리를 복음의 맥락 안에서 연계시키지 않는 것은, 자칫 열심히만 하면 스스로 감당할 만큼 충분히 완벽해질 수 있다는 인상을 주게된다.
그리스도를 설교한다는 것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을 설교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역과 은혜를 설교하는 것을 의미하며, 성경 어느 대목에서도 우리는 이 과업에 실패할 수가 있다.
균형
♧본문을 설교하지 않은채 급하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반대로 그리스도를 설교하지 않은 채 본문만 설교하지도 말아야 한다.
Chapter 3.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본문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설교하는 여섯 가지 실천법
◇성경의 모든 장르, 모든 부분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성경의 모든 주제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성경의 모든 주요 인물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성경의 모든 주요 이미지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모든 구원이야기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본능을 통해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모든 이야기의 모든 맥락이, 모든 주제의 모든 절경이 그리스도께로 수렴된다는 걸 안다면, 당신은 모든 성경 본문이 궁극적으로 예수님에 관한 것임을 보지 않을 수 없다.
PART 2.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설교
설교자는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이 있다.
Chapter 4. 몸담고 있는 문화를 향해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주위 문화와 공명하면서 저항하라
많은 이가 말하기를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전달방식의 변화라고 지적한다. 기독교 설교자나 교사들은 문화에 맞춰야 변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에 도전해야 하는가?
과도한 상황화를 통해 복음의 실제 내용을 타협한다면 군중은 모을 수 있을지 모르나 아무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설교자의 직무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의 문제는, 갈수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특히 기독교 신앙에 대해 적대적이고 세속화된 시대에 어떻게 신앙을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문화를 향해 설교하기, 그리고 문화에 다가가기에 관한 여섯가지 건강한 실천원리
1. 이해하기 쉽거나 익히 알려진 어휘를 사용하라
2. 권위있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논지에 힘을 실으라
3. 의구심과 반대의견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라
4. 기본적인 문화 내러티브(모두가 아는 것들)에 도전하기 위해 먼저 긍정하라
5. 복음을 제시할 때 문화의 압점들을 누르라 - 어떤 문화적 이야기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행복한 결말이 된다.
6. 복음이라는 동기로 초대하라
복음은 우리가 구원받는 방편일 뿐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요 그리스도인 삶의 모든 단계의 진보를 이루는 방편이다.
우리가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세속적인 사람들은 매번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복음을 듣게 될 것이다. 또한 이로써 복음에 대한 보다 싶은 이해가 생길 뿐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실제로 어떻게 기능하고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지를 볼 것이다. 이걸 보는게 핵심이다.
이로써 그들은 피상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복음화된다. 동시에 이미 믿는 그리스도인도 굳건하게 세워진다.
Chapter 5. 시대정신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예수님때부터 현대의 저변을 흐르는 문화 내러티브 검증하기
어떤 순간에도 결코 낡지 않는 유일한 설교는, 영원에 대한 설교다. 오직 성경에서만 우리 앞에 문을 여는 영원 말이다. 거룩한 사랑의 영원함, 은혜와 구원의 영원함, 지울 수 없는 우리 죄를 위한 영원한 구원의 은혜, 그리고 변치 않는 구원의 도덕.......
설교자여, 사람의 문제를 거침없이 들추어내라. 그리고 그리스도가 남기신 궁극의 답으로 대답을 하라. 그분이야말로 사람들이 간절히 찾고 있는 해답이다. -P.T. 포사이스-
상대방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랑의 관계도 자라날 수 없다.
이 제한들이 상호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다름 아닌 그 제안이 우리를 사랑이 빚어내는 마음과 정신의 다양한 해방으로 인도할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참된 사랑을 받고 전할 때, 가장 자기답게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자기 결정의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는게 요구된다.
기독교 설교자가 창중에게 보여 줘야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항이 있는데 아가페의 경험,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의 경험이 필연적으로 우리를 의롭고 자비로운 삶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Chapter 6. 마음에 닿게 그리스도를 설교하라
설교의 상황화가 이뤄지면 청중이 변한다.
마음이 무엇을 사랑하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보다 다른 무언가를 더 신뢰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의 목적은 단지 진리를 선명하게 전해서 정신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칠 수 없다. 더 나아가 마음을 사로잡아 실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변화는 단지 정신에 새로운 주장을 던짐으로써 일어나는 게 아니라 듣는 이의 상상력에 새 아름다움을 공급함으로써 일어난다.
"안다고 하는 것’과 ‘진짜 아는 것’ 사이의 괴리
조나단 에드워즈는 지성과 정감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입장에 거부감을 표한다. 다른 말로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는 것 알아요.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두려움으로 떨고 있어요”하고 말한다면 에드워즈는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그건 당신이 아직도 하나님이 당신을 돌보신다는 것 진정한 의미에서는 ‘알지’ 못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정말로 안다면 확신과 희망의 정감이 당신 안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의 정감의 뿌리에는 ”탁월성“이 있다. 그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고 신뢰를 확보하는 탁월성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인색하다면 그건 그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부유한 분으로서, 그들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모든 부요함과 보배를 얻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의 교리로서는 이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들 마음의 정감은 여전히 물질적인 것에 얽매인 나머지 예수님보다 그런 것들이 더 탁월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적인 부요함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은 품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그 진리를 품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설교에서 우리는 그들 앞에 그리스도를 다시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정감 안에 그리스도가 물질적인 것을 대체하도록 해야 한다.
말씀이 제대로 들려지면 청중은 그 자리에서 변한다
진리가 청중의 마음에 실재가 되게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설교해야 할까?
첫째, 그것의 진실성을 믿는 것 둘째, 그것에 대한 감각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가지는 것
구체적인 설명
첫째 그것의 진실성을 믿는 것에는 확신에 찬 설득력을 요구한다. 로이드죤스가 말하는 불타는 논리가 되어야 한다.
둘째 그것에 대한 감각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가지는 것은 청중의 추상적인 개념이 실재적인 감각 경험과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지성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상을 사로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청중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야한다.
마음에 닿게 설교하기 위한 훈련
마음에 닿게 설교하기 위해서는 일단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문화적인 배경까지 나아가야 한다. 다시말해 설교의 상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좋은 상황화 설교란 한편으로는 문화 내러티브와 규범들을 긍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도전하는 설교다.
마음에 닿게 설교하기 위해서는 보다 인격적이고 목회적인 측면을 포괄하는데 정감있게 설교하기, 상상되게 설교하기, 놀라게 설교하기, 기억하기 쉽게 설교하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설교하기, 적용가능하게 설교하기 등을 포함한다.
정감있는 설교가 아닌 세 가지
첫째, 영혼없는 설교 둘째, 단순 흥분성 설교 셋째, 의식적인 연기 설교
어떻게 하면 정감있는 설교가 나올까?
첫째, 설교내용을 잘 숙지 둘째, 깊고도 풍성한 개인 기도생활( 찬양과 회개, 하나님의 은혜의 경이 앞에 서는 거룩한 고독의 시간)
상상이 되게 하라
마음을 사로잡는 건 곧 상상력을 사로잡는 것. 영적인 진리를 청중이 겪은 생상한 감각 경험의 기억으로 연결하는 것. 영적인 것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처럼 가능한 한 구체적인 언어(그림언어와 확장된 은유)로 재현
놀라게 하라
설교할 때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개방하여 그 놀라움이 충분히 우리 안에 스며들도록 해야한다.
기억하기 쉽게하라
기억하기 쉬운 설교를 만드는 한 가지 요소는 통찰이다. 청중이 이미 아는 것을 그들이 아는 용어로 들려주기보다 신선한 통찰이 묻어나는 방식으로 개념을 전달해야 한다. 새로움과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야 한다. 통찰 가득한 설교는 깊은 연구, 독서와 탐구의 깊이에서 나온다. 기억하기 쉬운 설교를 만드는 두 번째 요소는 구술성이다. 말 전달에는 너무 많은 생각이 담겨선 안된다. 말을 전달하는 사람들은 보다 쉬운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하라
설교가 예수님께 이르지 않는 한 그건 설교라기보다 단지 좋은 강의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 언약, 죄의 구속과 같은 성경적 주제들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에 이른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런 주제들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추상적 명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교의 마지막을 ‘이렇게 살라’라는 문장으로 끝내지 마라. 대신 “우리는 이렇게 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우리도 이런 삶을 시적할 수 있습니다‘로 마무리 하라.
적용가능하게 하라
마음 닿게 설교한다는 것은 적용가능하게 설교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두 책임: 첫째, 성경 본문의 진리를 향한 책임 둘째, 청중의 삶을 향한 책임
적용해서 실천적인 변화를 이루도록 돕는 방법
대화상대를 다양화하라: 의도적으로 우리의 관계망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설교를 준비할 때 떠올리는 사람을 다양화하라: 영적인 상황이 다양한 사람들(비신자, 새신자, 연약한 기신자, 굳건한 기신자), 괴롭히는 죄가 다양한 사람들(교만, 정욕, 염려, 탐욕, 편견, 강한 자의식, 분노, 우울, 두려움, 죄책감), 처한 환경이 다양한 사람들(외로움, 핍박, 권태, 고뇌, 질병, 실패, 우유부단, 혼란, 물리적 장애, 노화, 환멸, 따분함)을 떠올리라. “이 본문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에게 어떻게 적용될까?”를 질문하라.
설교전체에 적용을 직조하라
설교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더 직접적이로 구체적인 적용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교가 막바지에 이르면 적용들을 모아서 다시 정리해 주는 동시에 한층 더 구체적으로 마음에 새겨주는 게 좋다. 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라
다양성을 활용하라
‘직접질문’을 사용하라: 마음의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들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라
다양한 형태의 적용을 균형있게 활용하라
1)경고와 훈계 2)격려와 새 힘 주기 3)위로와 다독거리기 4)설득과 애원 5)부추기기
감정적으로 깨어 있으라
1)말랑말랑한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 2)강력하면서도 정감있게 하라
PART 3. 성령을 덧입은 설교
설교자는 삶과 인격에 성령이 오셔야 한다
Chapter 7. 설교가 들리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설교보다 설교자로서의 삶을 더욱 힘써 준비하라
우리 설교안에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초청할 수 있을까?
휫필드는 종종 그리 썩 좋지 못한 설교문을 가지고도 위대한 설교를 했다. 성령이 어떻게 그의 설교에 임재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흿필드와 바울 두 사람이 설교에서 성령이 그들을 통해 일하시도록 초대한 비결은? 첫째, 그들의 행위: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게 아니라 그분을 높였고 그 분의 영광을 드러냈고, 그렇게 하는 중에 그분을 향한 그들 자신의 경이와 기쁨을 발산했다. 둘째, 그들의 인격이었다: 그들의 영적인 은혜와 성품으로써 이는 성령의 열매를 말한다. “성령의 나타나심”을 위해서 재능과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같은 우리의 영적 열매다.
성령을 통해 따스함과 힘이 하나가 된다 : 하나님의 어린 양이면서 하나님의 사자인 예수 그리스도.
겸손하지만 권능의 사람, 의롭지만 은혜의 사람, 권위 있으면서 동시에 긍휼이 넘치는 사람 : 이것이 모든 위대한 설교자의 능력의 비밀이다.
사람들은 그들 안에서 사랑, 겸손, 온유함이 능력, 권세, 용기가 절묘하게 조화되는 놀라운 연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들지 않고 연약함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들지 않고 기꺼이 이야기하고, 그들이 섬기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과 염려까지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일단 설교단에 올라서면 그들은 치솟아 오르는 권위를 품고 천둥소리를 발했다.
자신의 숨은 마음을 살펴보라
설교를 준비하기보다 설교자로서의 삶을 더욱 준비하라.
마음으로부터 설교한다는 것
힘을 다해 설교하라 경이를 품고 설교하라 정감을 담아 설교하라 진정성 있게 설교하라 그리스도를 흠모함으로 설교하라
생명을 전하는 소리로 살자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섬기는 그 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시다”
설교자와 더불어 청중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달려있다(살전 1:5)
설교자가 염두해 두어야 할 두 가지 근본대상은 ‘성경말씀’과 ‘듣는 사람’이다. 좋은 설교는 복음 진리 자체를 향한 사랑과 그 진리를 듣는 사람들을 향한 설교자의 절박한 사랑에서 나온다.
성령을 통해 계속되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행동은 성경의 언어와 의미에 최우선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설득과 예화, 여타 방법을 무시하는 것은 설교의 효력을 훼손한다.
(인용 발췌함/ 이 정도 양이면 책을 구입해야 할 정도네요. 출판사에 죄송하고 원 정리자를 잊어버렸는데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