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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선택하고 결심하라 (수24:1~18)

강가딘777 2019. 10. 14. 09:24

확실히 선택하고 결심하라(수24:1~18)

 

(참고구절)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의미,목적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18:18-19)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19:5-6)

 

 

"애굽의 비옥한 고센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의 호의와 애굽신의 가호아래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큰 민족을 이룬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가나안땅을 향한 여정으로 부르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편안하게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고 자식들이 공부 더 잘해서 안정된 직장을 먼저 구하고 건강하게 잘 사는데 우리를 구원하신 뜻이 있는게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백성을 창조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감사하며 이웃의 안정과 행복에 깊은 관심을 쏟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 인간이 되지 않으면 어떤 외적인 조건도 그 사람에겐 궁극의 축복이 될 수 없고,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될 것이다.

 

본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향한 여호수아의 마지막 당부가 나와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일부터 시작하여, 그 후손들을 애굽에서 번성하게 하신 일, 출애굽하여 광야를 향할 때 기적적으로 외적의 추적으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일, 요단강 동편에서 모압왕 발락을 이기신 일, 요단 서편땅을 정복하신 일을 차례로 나열한다.

 

이 모든 역사가 보여준 것은 2가지다.

1.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 하나님인가 하는 것이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약속을 지키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 자기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분명한 목적을 갖고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이심을 이 역사가 보여준다.

 

2.하나님은 살아계신 주권자라는 사실이다.

400년전에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루셨다면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분이 역사의 주관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다. 만일 그분이 단지 지역신에 불과하다면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떠돌이 부족의 하나님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역사였다.

 

자기만의 이런 역사가 있는 사람, 이야기가 있고 간증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담대하게 오늘을 살 수 있고 확신을 갖고 미래를 열 수 있다. 그 이야기에서 고백할 수 있는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모으고 쌓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진정 살아있는 교회이다. 사람만 기억되는 교회가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싸구려 은혜로 범벅된 신앙주의는 인간의 책임있는 반응을 탈락시키고, 탈가치적인 종교인으로 만든다. 성경에 충실한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결단의 선물이다."(cbs매일성서 참조)

 

 

 

k) 성경을 문맥과 역사적 스토리로 이해하지 못하면 본문의 이야기는 그저 아름다운 스토리로만 기억될 것이다. 그 순간은 비록 훈훈한 미담이 맞지만 하나님의 성경계시는 거기에서 머무르기를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모든 이스라엘 지파가 여호수아 앞에서 확실히 다른 신들을 버리고 여호와만을 따를 것을 진실되게 '선택'하고 여호와만을 성실하게 섬기기로 굳게 '결심'했다. 오늘 우리들처럼 말이다. 아니 우리보다 훨씬 진지하게 언약에 임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당부에 따라 모두가 결의함으로 재차 언약식을 했으며, 그에 따른 율법과 법도을 제정했고, 증거석까지 함께 세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한 세대가 지나가면서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여호수아 마지막 장이 여호수아 뒤에 남은 장로들이 생존할 동안에는 여호와를 섬겼다는 구절로 끝맺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수24:31)

 

그리고 똑같은 내용이 사사기 2장에서 반복된다.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삿2:7)

 

 

그 다음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 당연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 주위에 있는 나라의 신들인 바알과 아스다롯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고 섬김으로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들을 당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계속해서 노략을 당했다.

어디든지 재앙이 내려 이스라엘의 괴로움이 심했다.

(삿2:6-15)

 

우리는 여호수아~ 사사기가 이어지는 이 대목에서 인간의 뿌리깊은 죄악성을 뚜렷하게 직시하게 된다.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오는 끊임없는 불신앙과 불순종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인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를 뛰어넘어 저 멀리 어렴풋하지만 은은하게 비추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조금씩 의식하게 된다.

 

 

 

*질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은 배타적인 사랑이요 절대적인 사랑이다. 바람난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질투는 기짓신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하나님의 거룩 안으로 부르신다. 질투는 거룩한 정체성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인간의 표현방식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거룩성을 지키기(오직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라 사는 것)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의 감정으로 표현한다.

 

*수고하지 아니한 땅,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

가난안땅이 떠돌이 히브리 민족의 땅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며 은혜, 그것은 선물이었다. 우리를 향한 구원의 은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