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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_막스 배버

강가딘777 2019. 6. 1. 10:14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자본주의의 정신’을 만들었다. '직업 소명 의식’이 그 기초가 되다.

 

출발점 :

 

근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합리주의’가 어떻게 근대 유럽에서만 탄생하고 성장하게 되었는가? 근대 유럽의 고유한 경제 체제인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칼뱅주의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트의 각 교파의 금욕적 생활 이론과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 발전에 정신적 추진력이 된 자본주의의 ‘정신’ 사이에 어떤 내면적 관계가 있다 . 수많은 역사적 요인들의 작용에 의해 탄생되고 발전해 온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에 종교적 동기가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는가?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소산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정신’과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갓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정신

 

베버의 ‘자본주의’는 단순한 영리 활동이나 이윤 추구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 유럽에만 있는 독자적인 ‘자본주의’로,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의 노동에 기초한 ‘합리적이고 경영적인 산업 조직’의 보급에 의해 사회의 욕구 충족이 오로지 ‘시장 관계와 수익성’을 지향함으로써 수행되고 있는 영리 경제. 곧,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는 오랜’ 자본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그 같은 지배를 타파하고서 비로소 탄생한 것.

 

여기에는 ‘영리 추구의 욕망’이라든가 ‘자본가적 정신’ 등은 결코 포함될 수 없다.

 

이는 벤저민 프랭클린주이 근면과 노동, 소질, 정직, 신용 등과 같은 덕목에 대한 유명한 도덕훈에서 전형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정신’ 또는 ‘윤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프랭클린의 도덕률에 명백히 제시되어 있는 것은 ‘신용할 수 있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이상’이며, 특히 ‘자신의 자본을 증식시키는 것을 자기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각각의 의무라고 하는 사상’이다. 이는 하나의 ‘윤리적 태도(에토스)’의 표명이며, 이와 같은 에토스가 바로 베버가 ‘자본주의의 정신’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의 역할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이전에는, 대개의 영리 활동이나 이윤 추구는 윤리와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 어느 면에서는 윤리에 반하는 부도덕한 것으로 생각.

 

근대에 이르게 되면 경제에서 경제적 영위가 정신적 또는 윤리적인 것으로 간주. 이 같은 전환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종교개혁 이후에 등장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근대의 ‘자본주의의 정신’이 형성되는 데 불가결한 윤리적 요소를 제공한 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라고 베버는 파악.

 

물론 부의 축적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의 정신’과 말 그대로 엄격한 금욕을 가르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자본주의의 정신’이 탄생될 때 이른바 산파역으로서 그 ‘요람’을 지켜보며 윤리적 태도를 주입하는 데 이바지한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이후의 ‘자본주의의 정신’ 속에는 이와 같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앙이 ‘망령’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직업의 소명 의식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어떠한 작용을 통해 ‘자본주의의 정신’의 형성을 촉진했는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신앙적 특징인 ‘직업의 소명 의식’으로 설명함.

 

콜링(calling)’에는 ‘신의 소명’라는 의미 이외에 세속적인 ‘직업’이라는 의미가 포함. ‘세속적인 직업’이 바로 ‘신의 부름에 기초한 우리의 사명’이라는 사고방식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고유한 윤리 개념.

 

루터는 이신칭의를 통해 가톨릭의 율법 준수의 업적주의를 비판했다. 그 결과, 수사들의 수도원 생활이 세속의 일반 평신도들의 생활보다 더 가치 있는 ‘좋은 직업’이라는 사고방식이 사라지고, 오히려 수도원에서의 수사 생활은 세속의 의무를 도피한 이기주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생활 속의 각 개인의 위치에서 생겨나는 세속에서의 의무 수행’이야말로 다름 아닌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사명이라고 보았다.

 

기도하고 또한 노동하라

 

‘직업의 소명 의식’의 제시는 루터, 모든 것은 오로지 ‘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며 적극적으로 직업 노동의 조직화와 합리화의 추진은 칼뱅파 사람들.

 

예정설을 믿는 칼뱅파의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이 정해져 있고 또 은총에 의해 성스럽게 구분된 자임을 현세에서의 노동이나 이웃 사랑과 같은 일상적 실천을 통해 증명해 보여야만 했다.

 

칼뱅주의 교인들에게 ‘직업의 소명 의식’이란, 사실 ‘신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한 노력’과 ‘악마의 유혹에 대항하기 위한 싸움’이라는 치열한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일상생활을 구석구석까지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합리화하고 일체의 쾌락을 포기하며 직업 노동에 힘써야 한다는 엄격한 생활 태도는 여기에서 생겨났다.

 

과거의 수도원에 존재했던 ‘기도하고 또한 노동하라’라고 하는 금욕적 생활 태도는 그대로 ‘세속’으로 옮겨져 세속에서의 금욕을 통해 직업 노동을 ‘성화’시키는 것이 되었다.

 

금욕주의적 직업 윤리를 가르친 칼뱅주의

 

이 같은 엄격한 금욕주의적 직업 노동의 윤리를 가르친 칼뱅주의와 이러한 계통의 프로테스탄티즘 각 교파의 구성원은 중산층이었고, 칼뱅주의의 직업 윤리는 이들의 생활 윤리로 자리잡았다.

 

베버가 문제 삼은 것은 루터와 칼뱅의 가르침 그 자체가 아닌, 이들의 가르침에서 연유하는 실생활에 대한 영향이었다. 따라서 중산 계급의 직업 노동의 조직화와 합리화로 집약되는 그 무렵 대상인 계층의 무신론적이며 ‘천민(파리아)주’ 자본주의적인 ‘화폐와 재산의 추구’에 대한 혐오감과 적대감이 담겨 있었다.

 

금욕적 절약에 의한 자본의 축적

 

금욕 생활을 하면서 조직적 직업 노동에 종사하면 당연한 결과로 부가 쌓이게 된다. 부를 향유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기에, 부는 절약과 재투자로 더 큰 부를 가져오게 된다. 직업 의무의 수행은 처음부터 신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정직한 노동으로 손에 들어온 이익은 ‘신의 하사품’으로서 정당화되었다. 이윤 획득의 기회에는 신의 섭리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세속적 금욕은 사려와 분별이 없는 소유의 향락에 온 힘을 기울여 반대하고, 소비, 특히 사치한 소비를 거부했다. 반면, 금욕은 심리적으로 재화의 획득을 좋게 생각하지 않은 전통주의적 윤리에서 해방시키며 이윤 추구를 합법화시켰다. 그뿐 아니라 그것이 직접 신의 의지에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과거의 윤리라는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 육체의 욕망과 사물의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은 결코 합리적 경영을 위한 투쟁이 아니었다. 비합리적으로 소유를 사용하는 데에 대한 투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소비가 거부되고 이윤추구에 대한 전통적 비판에서 해방되면서 필연적으로 등장한 것이 ‘금욕적 강제 절약에 의한 자본 형성’이었다. 여기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이루어진다.

 

직업 윤리의 탈종교화

 

‘부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오만과 격정 그리고 온갖 형태로 세속에 대한 애착도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점차 직업 윤리 속에 탐욕이 침입해 들어오게 된다. 애초에는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던 ‘자본주의의 정신’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그 종교적 외투를 벗어 버리게 되었다.

 

직업 윤리 속에서 신앙적 뿌리가 상실되고 신의 모습이 희미해지면서 부, 그 자체가 전면에 크게 확대되어 나타났다. 이들의 직업 윤리는 더 이상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더 많은 이득을 위해 일체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그를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세속적 윤리로 변모해 간 것이다.

 

이와 같은 ‘공리적 현세주의’가 출현하면서 일찍이 신앙에 의해 지탱되어 온 직업 윤리는 형해화되고, 그 남은 흔적 위에 계몽주의적 인간중심주의가 연결되면서, 벤저민 프랭클린과 애덤 스미스가 묘사하는 ‘경제인’이라는 개념과, 윤리와 경제의 조화의 원리가 보급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종교적 핵심을 상실하면서 독립하게 된 시민 사회의 직업의 에토스였다.

 

베버가 이 논문의 첫 부분에서 언급한 ‘자본주의의 정신’이란, 다름 아니라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 윤리에서 그 종교적 기반을 제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 아니 그뿐 아니라 근대 문화의 본질적 구성 요소의 하나인 직업 관념 위에 선 합리적 생활 태도는 ······ 그리스도교적 금욕의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문화 · 조직화 · 기계화는 근대 자본주의의 숙명

 

베버는 대개 이상과 같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의 내적 연관성을 해명하고, 그에 입각해 마지막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일찍이) Puritan(청교도)들은 직업인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직업인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금욕 정신은 수도원에서 직업 생활의 한복판으로 옮겨져 세속적 도덕을 지배하기 시작하자마자 이번에는 기계적 생산 조건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근대적 경제 조직이 더 강력한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내는 데 힘을 더해 주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 질서야말로 압도적인 힘으로 그 톱니바퀴 속에 들어가 있는 일체의 모든 개인─직접 경제적 영리에 종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의 생활을 결정하고 있으며, 미래 역시 아마도 마지막 한 방울의 화석 연료가 불태워질 때까지 이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베버는 오늘날 ‘강철과 같이 견고한 외피’로 변해 버린 자본주의를 관통하고 있는 ‘합리화’, 곧 전문화 · 조직화 · 기계화는 바로 근대의 ‘숙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차, 이 견고한 외피 속에서 살아갈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거대한 발전이 끝날 무렵, 전적으로 새로운 예언자가 등장할 것인가. 또는 과거의 사상과 이상이 강력하게 다시 부활할 것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거대하게 장치된 기계에 화석화가 일어날 것인가. 이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설령 이를 알지 못한다고 해도 그런 문화 속에서 살 ‘마지막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진리일 것이다. ‘정신이 없는 전문인, 가슴이 없는 향락인. 이처럼 텅 비어 있는 인간들이 일찍이 달성된 적이 없었던 인간성의 최고 단계까지 스스로 올라섰다’고 자찬할 것이다.”

 

베버 특유의 역사 연구는 이처럼 자본주의의 장래에 대해 엄한 전망으로 끝맺고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 ~1920)

경제학과 법률학, 사회학 등 다방면에 걸쳐 커다란 업적을 남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4~1905)

 

베버의 독창적인 종교사회학적 접근 방식은 궁극적으로 상부 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토대라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이해와는 크게 대립되는 것.

 

그 같은 대립은, “인간의 행위를 직접 지배하는 것은 이해관계(물질적 또는 관념적)이며 이념은 아니다. 그러나 ‘이념’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상’은 매우 자주 그 궤도를 결정한다. 그 궤도 위를 인간의 행동이 달릴 수 있도록 밀고 나가는 것이 이해관계의 역동성이다(『세계종교의 경제 이론』 서문)”라는 베버의 말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베버의 사회학이 종종 ‘이념과 이해관계’의 사회학으로 불리고 또 ‘다원적 시각’이 담겨 있다고 평가되는 것은 이 때문.

 

‘경제’이든 ‘정신’이든 베버는 일원적이거나 일면적인 세계관을 배척하고 역사에서 늘 다원적이고 복잡한 인과 관계의 연관성을 인정했다. 따라서 베버는 이 논문의 첫 부분에 자신이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지닌 역할에 조명을 비춘 것은 어디까지나 ‘인과 관계의 한 측면을 추구’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고 써 놓고 있다.

 

역사 연구란 무수히 다양한 역사적 현실을 어떤 한 가지 ‘이념형’을 통해 재단하고 그렇게 드러난 한 단면만 가지고 인과 관계의 연관성을 설명하려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베버가 가진 역사 연구의 기본 태도였다.

 

베버는 이러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 “이는 문화 현상의 총체가 ‘물질적’ 이해관계의 산물 또는 그 함수로써 연역될 수 있다는 낡은 신앙과는 무관한 것이며 ······ 사회 현상과 문화 현상을 경제적 제약과 중요성이라는 특수 관점에 서 분석하는 일은 창조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과학적 원리의 하나이다. 이를 주의 깊게 활용하고 독단에 빠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세계관’으로서의 역사적 유물론이나 역사적 실재에 대한 모든 관계를 설명해 주는 공통 분모로서의 역사적 유물론은 결단코 부정되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경제적 역사 해석이라는 작업은 우리 잡지의 대단히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절대지식 세계고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