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누리는 삶
부활을 누리는 삶
마가복음 13:33~47
2015.4.5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완성하고 확정짓는 일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룬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큰 소리로 외치고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은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의 뜰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습니다.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이스라엘이라도 하나님의 거룩함앞에 쉽게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성전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피의 제사를 통해서 미리 정해진 제한된 방식과 때에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짐승의 제사나 제사장의 정보를 통해서 관계가 회복되는 길을 보여 주었지만 그건 역시도 제한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제도와 그 성전 자체를 종결짓는 분으로 오셨습니다. 참된 성전을 우리 가운데 이루어 주시는 분이로 이 세상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자신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혀져 있는 굳은 담을 헐어내시려고 세상에 임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거룩한 아드님으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인류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죄를 속하는 죽음의 잔을 받으시는 순간만큼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버림과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자기의 몸에 짊어지고 죽으시는 희생의 제물로서 죽으시기 때문에 그 죽음의 순간만큼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과 외면를 당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온 땅을 뒤덮는 어둠은 온 인류의 죄에 대해 쏟으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표현한 것입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순간 왜 하나님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버림 받으십니까? 그가 그냥 아들로서 죽음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자기 몸에 대신 속량하는 속죄의 희생양으로 지금 죽음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예수님의 몸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이 고통의 외침으로 하나님앞에 외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사랑받는 아들이시지만 그가 온 인류의 죄짐을 담당하는 순간만큼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버림과 진노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세상죄에 대해 하나님이 쏟으실 진노와 저주를 당신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로서 사람이 되어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의 진노와 저주를 온 몸에 받으시며 죽음의 순간을 맞으셨습니다. 그렇게 참혹한 희생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져오신 것은 무엇입니까? 죄 용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의지하는 영혼들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 이런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 씻을 수 없는 우리의 영혼의 죄를 사함받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앞에 의인으로 서도록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희생을 치른 것입니다. 그 죽음의 공로를 의지해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음을 통해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그림이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이 위에소부터 아래로 갈라져서 둘이 되고 그사이가 열린 것으로 극명하게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그 육체의 죽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 휘장을 찢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막힌 장벽을 헐어버렸고 막혔던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예수님의 찢긴 육체를 통해서, 그의 흘린 피를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살 길를 얻었고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이 사건을 완성하고 확정짓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으로 끝나 버렸다면, 그거 정말 하나님의 아들로써 인류의 죄를 속하는 분으로 확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죽음의 매이는 인생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것, 그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속죄의 죽음이없다고 하는 사실을 확정한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피이기에 우리 모두를 하늘 성소에 들어가게 하는 생명의 길,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우리는 우리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의 삶을 부활의 소망과 믿음으로 삽니다. 그 미래의 소망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현재 주의 부활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 가는 길이 이미 열렸습니다. 언제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부활로 확정된 십자가의 은혜는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고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이 열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를 믿고 그 아버지 앞에 나아가 거하고 그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아들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하늘 아버지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의 부활을 누리는 삶의 가장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더이상 성전 바깥에 귀퉁이에서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곧장 휘장 사이를 지나서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흘린 피가 내가 곧장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버리지 못한 죄의 습관, 열등감까지도 주 예수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인간의 어떤 조건도 상관없이 단 한가지 주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그 보좌 앞으로 나오면 우리에게 하나님에게 향하는 길이 열립니다. 그것이 주 예수의 찢긴 육체 안에 있는 신비로운 은혜입니다. 휘장을 지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살 길을 주님이 주셨는데 그 길은 우리 영혼에 열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아들로 써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그 공로에 힘입어서 나는 죄인이고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 주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이 나를 받으시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언제든지 열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예수의 피, 그의 죽음이 아니면 그 죽음에 의지하고 그 죽음에 합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망도 없는 죄인된 인생입니다. 이런 고백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실패한 것 때문에 부끄럽고 초라하지만 주 예수의 피를 의지하면 주님이 나를 용납하지고 용서하시고 받으시는 것 때문에 내가 주의 피를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연약하고 부족한 나의 아버지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내어 주셨으면 믿고 감사하며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용서하심을 믿습니다. 나의 주 예수의 부활의 생명 안에 살게 하시니 내가 그 부활의 생명을 의지하여 힘있게 살겠습니다 결심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나를 만지시고 고치시고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 생명과 삶 전체를 주관하시며 나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라고 주 예수의 십자가 안에서 예수의 피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용납하시는 은혜를 의지하면서 나가는 것이 우리가 휘장을 지나서 하늘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주 예수의 부활을 누리는 삶의 가장 현재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고백으로 나가면서 그 믿음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 누림이여러분 안에 가득 하길 바랍니다.
신앙생활 중에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누리는 것입니다. 늘 주의 피를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고, 늘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누리면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글과 지식으로 배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인격적인 삶의 경험과 체험으로 배우고 담아가야야 합니다. 자식의 잘못만 지적하고 꾸짖는 아버지라는 잘못된 인식이 박혀있어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기를 꺼리고 아버지를 누리지 못하는 자녀들이 현실에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아버지를 잘 누립니다.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를 아버지로 누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줄어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못 누릴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보좌릉 쳐다보아야 할 때 땅만 쳐다보고 사람만 쳐다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늘 성소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그를 바라보며 그분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누리고 그것을 경험하는 법을 우리가 점점 배워가야 합니다.
부모와의 관계를 잘 누리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풍성한 아버지의 누림으로 가지 못하고 아버지가 능 멀기만 하고 아버지의 은혜를 충분히 누리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그렇게 발전되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피를 의지하여 아버지 앞에 나아갑니다. 어떤 죄를 지은 순간만 부적 하나 붙이듯이 그렇게 행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로 누리는 삶에서 우리가 한걸음 한걸음 풍성한 삶을 쌓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버지의 역할, 아버지 이미지를 잘 세워 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뵈어도 하나님이 좋은 줄 모릅니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너무 크고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안 좋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집에서 아버지의 좋은 이미지를 자녀들에게 심어줌으로 그 아버지의 그림을 통해서 하늘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을 누리는 삶으로 점점 더 나아가도록 만들어 가야 합니다.우리 스스로 하나님 아버지를 누리는 누림으로 나가는 것을 자녀들에게 아버지됨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 자녀가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풍성히 누리는 데로 나아가도록 돕느냐 마느냐를 결정짓습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로 드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 자녀나 다른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어떻게 아버지로 누리느냐를 보고 배우고 경험하도록 돕고 섬겨줘야합니다. 사람들은 귀로 들은 것으로 배우지 않고 눈으로 본 것으로 배웁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로 누리는 기쁨과 여유의 넉넉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럴 때 나의 자녀 그리고 다른 지체들과 세상사람들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두번째 예수님의 죽음의 합하는 삶, 희생의 길을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 려거든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에 합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에 합해서 내가 죽어야 되는데 옛사람의 죄들이 드러날 때 그것이 나에게 죽어야 될 것이라고 부정하는 자기부인과 그 과정속에서 지어야 할 짐들을 죽음과 고통의 길일망정 십자가를 기꺼이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여러가지 말로 자기를 변호하거나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난을 피하려거나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수욕을 감당하면서 용서하시면서 하나님께만 의탁하시는 예수님 모습이 감동을 주었고 영혼에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예수 십자가를 믿고 그 분안에서 죽은 자로 그 부활 안에서 살아난 자로서 하늘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누리며 사는 법을 우리가 배워가면서 예수님의 죽음에 합하는 삶,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기꺼이 지며 예수님의 희생의 자취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때에 우리의 그 삶이 감동을 주고 힘을 주고 용기를 줄 것입니다. 그런 삶, 부활을 누리는 삶이 되는 예람의 지체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 능력으로 그 부활의 삶으로 이 세상을 섬기고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힘을 다하는 지체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