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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사다리 원리'

강가딘777 2011. 5. 30. 23:04

 


"그러므로 더욱 힘써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1:5-7)

 

 

(베드로는 오순절 이후에조차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과는 교제하는 걸 못견뎌했습니다.(갈2:1 -14)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미덕에 관한 그의 유명한 '사다리 원리'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 어떻게 발전되어 나가는 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은 최고의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보이는 대로 행하는 믿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외골수처럼 변질되는 경우가 있는데,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면서 온통 하나님 애기로만 그 생각의 범위가 좁아질 때입니다.

그래서 심각하다할 정도에 이른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많이 갖지만,

사람들과 세상에 일들에는 무관심을 넘어 냉랭하기까지한 사람입니다.

대체적으로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차갑게 사람들을 대하고 심판과 정죄의 말씀들을 가지고 세상을 재단합니다.


약간 다른 모습이지만, 교회내의 일 중심, 행동중심 주의자들에게도 비슷한 내용이 발견됩니다.

이들에겐 교회에서 요구하는 형식과 일에 대한 대단한 열심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뤄내는 성취감과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이 그들에겐 믿음의 척도가 되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그 일과 구조와 형식의 이면에 숨겨진 내적인 가치와 품성과 영적 요소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나 고민이나 다룸이나 접근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공동체와 우리의 영적 건강에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믿음의 균형을 잃고 믿음의 생활를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십시오"

 

여기서 '덕'이란 막무가내식, 독불장군식, 옹고집형,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믿음을 떠나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친절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내 믿음이 좋다고 자인하면서 덕없는 말과 행동으로 그것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마음은 '참 부끄럽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거기에 지식을 더하십시오."

 

믿음의 공동체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노력해야겠지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없는 체 막연한 선함만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속으로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질문에 우린 분명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 지식에 무관하거나 성경의 진리에서 분리된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려고 하는 것, 그것이 우리 믿음의 기초가 아닐까 합니다.

바른 '앎'이란 그저 지식적인 차원이 아니라, 서로의 모든 것을 주고 받고 나누는 친밀한 관계로까지 진입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말하기를, "지식에 절제를 더하십시오."

 

많은 성경적 지식을 갖고 있고 여러 신학적 이론과 기독교 교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 범하기 쉬운 죄는 아마도 '교만'일겁니다.
자기가 습득한 지식들과 자신의 본모습이 그대로 일치하는 게 아닌데도, 진리를 소유하고 다루는 자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자기를 진리와 동일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진리의 잣대로 다른 사람들과 일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위치에 은연중 서게 됩니다. 아는 게 병이 되는 셈이죠.
우리는 이때 내가 스스로를 진리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할 있을 가능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겸손한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절제의 은사가 꼭 필요합니다.

 

"절제에 인내를 더하십시오."

 

절제가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라면, 인내는 상대방을 향한 것입니다.

무척 어렵겠지만 내가 주님께 받은 사함을 기억하며 내게 거슬리는 상대를 용서하고 참아주십시오.

상대를 선으로 대해주십시오. 긍휼의 마음으로 대하십시오.

 

"인내에 경건을 더하십시오."

 

어려운 문제에 부딛혀 아무리 절제하고 인내하려해도 우리의 영적 수준이 깊지 않은 한, 우리는 곧 한계에 봉착할 겁니다.

마음은 원으로되 육신이 약합니다. 생각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지만, 우리의 몸은 그 생각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때 믿음의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경건에 이르는 꾸준하고 끈기있는 몸의 습관을 통해 마음의 연단을 받게 되고 우리의 영은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집니다. 

그것은 규칙적인 기도훈련, 모든 삶속에서 말씀을 이뤄가는 훈련,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는 훈련,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훈련, 제자로서 살아가는 훈련 등입니다.

 

"경건에 형제 우애(신도간의 우애)를 더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적인 성숙과 함께 외적인 성장과 변화를 기대하십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이 교회공동체에서 하나님께서 지금의 나를 통해 하시기를 원하는 일들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미루지 말고 신중한 자세를 가지고 바로 하십시오.

준비가 부족하다 느낄 때는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분이 길을 내십니다.

언제나 섬기고 돕는 종의 마음으로 그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형제 우애'가 믿음의 가족들을 향한 신뢰라면, '사랑'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대한 애정입니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께 받은 그 깊고 영원한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데, 사랑치 못할 사람이 있을까요? 

 

 

(일평생에 걸친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 베드로는 신도간의 우애와 사랑에 큰 가치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신도간의 우애' 안에서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긍휼과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나라를 세워가시는 방법 중 하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자신의 긍휼을 서서히 주입해 주셔서, 그들이 서로서로 그리고 세상을 향해 사역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성전안에 임재하셨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고전3:16)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은,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이해하고 느끼는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