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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강가딘777 2011. 4. 29. 13:01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

 

살다보면 무엇이 바른 삶이고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사랑에서 우러나온 말이라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불필요한 조언, 듣기 싫은 말일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부담스런 간섭이나 쓸데없는 참견일 때가 많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안고 사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을 자기감정으로 바라보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은혜의 마음을 주시며 마음의 평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도의 하나됨을 깨지 않으면서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자기 성향에서 나오는 모든 선한 것은  분명 좋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한계입니다.

그러지 못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우리에게 임한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가장 큰 은사이며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달라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안에 사랑이 부어졌음을 깊이 실체적으로 인식할 때에 자연스레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탕자와 같이 아버지의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입은 자들임을 깨닫고 됩니다. 이 말이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생각되시나요?

 

내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으므로 우리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도저히 사랑 못할 사람도,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우리는 능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향적으로 사랑이 많아서나, 내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 사랑의 은사를 받은 것도 아니며,

교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다보니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 것도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냉랭한 우리를 사랑하는 자로 변화시킵니다.

 

모든 것이 분명치 않을 때, 우리를 향한 주님의 다함없는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사랑의 분명한 정의들을 붙잡고 기도하게 됩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당신은 오래 참고 있습니까? '아니오'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참으로 사랑한다면 오래 참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의 속성으로 우리를 사랑하시죠.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몰라도, 저에게 있어 진실한 사랑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게 상대를 대하며 그 사람을 배려하며 존중하면서도 무엇이 그 사람을 진짜 위하는 것인지 생각하며

솔직한 감정으로 해야 할 말을 하며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메마르고 건조한 관계보다 피드백이 있는 주고 받는 관계가 정상적이고 생명이 있는 사랑의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불편해 할 말도 하고 무례하게 느껴질 행동도 하게 되네요.--

 

간혹 상대가 마음의 문을 닫을 때가 있습니다. 사실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친한척 하니?"
"나하고 같이 보낸 시간도 없으면서 왜 아는척 하니?"
마치 "분수도 모르게 왠 참견이냐?"라는 얼굴로 쳐다봅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안다고 해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 것이 대부분일겁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데 하물며 남이랴?^^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교회공동체안에서의 우리들의 관계는 '한 몸에 속한 지체들'라는 성경의 말씀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관계라는 것이죠.

각각의 지체가 하는 일과 그 성격을 서로 잘 모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하며 서로를 위하는 존재들인 것을 압니다.

우리는 한 몸을 위해 살아가는 각각의 지체들이며,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분명 압니다.

우리가 바로 믿음으로 함께 하나님 주신 인생의 사명들을 감당해야 할 동역자들 아닙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영적인 -이 땅의 혈육보다 오히려 더 가깝다고 느낄- 한 가족이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를 잘 알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서로에 대해 '더욱' 알아가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낯선 태도를 가지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는 거부감을 얼굴의 굳은 표정과 성의없는 말과 배려없는 행동으로 표시합니다.
"나 너 잘 몰라. 너 하는 행동이 오히려 이해안된다. 귀찮아."

"네가 나한테 돈을 쓰지도 시간을 들이지도 않은 주제에 친하다고 여기는거냐? 이런 말 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

(너무나 당신에게 그것들을 주고 싶지만, 돈과 시간과 건강이 없어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자연스러운 성도로서의 관계를 맺는 것에 무관심하게 보이고 또 실제 그것을 잘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모든 성도들과 다 친하게 지낼 수는 없죠.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 한 몸을 이룬 지체로서 한 가족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은

서로를 받아들이며 더 깊고 생생한 관계를 이룰 수 있는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관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다가 어떤 그룹에 함께 몸담자마자 아주 급하게 관심을 표합니다. 참 이상했습니다.

수적으로 그리 많지 않은 공동체내에서 평상시엔 전혀 말한마디 안붙이다 어떤 조직적인 변동에는 왜 이렇게 급하게 반응할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많은 상황속에서 우리들이 오래 참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더 진전된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막힌 관계속에서 애써 평온한 상태로 오래 참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한 가족이라는 의미는 모든 것을 초월해 하나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비록 우리가 초대교회처럼 모든 것을 함께 통용할 수 있는 현실은 못되지만,

우리 믿음의 정신만큼은 친혈육 이상으로 친밀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위하며 섬기며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이 땅에서 하나님 기쁘게 원하시는 삶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세상의 믿음없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외면하고 상대에게 거절감을 안길까요? 참 이상합니다.

비록 같은 공간에서 삶으로 함께 부대끼지 않아도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제 생각이 잘못 되었든지,

그 사람에게 제가 피상적으로 잘못 들이댔거나 부담되는 접근을 시도했든지, 그 분이 성격상 수줍음이 많거나 아직 그런 관계를 이룰 준비가 안되었거나,

그 중 하나겠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길이 참으신 것처럼,

우리에게 오래 참을 수 있는 은혜 주시기를, 또 각자의 실수와 잘못에도 사랑으로 참고 대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근데, 그냥 모른체 하는 것이 오래참는 것일까요?

알고도 모른 체하며 기다려 주는 것과 아예 무관심하는 것은 분명 다른데,

저는 우리들 모습에서 그 둘이 구분이 잘 안되네요. 왜 그럴까요?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생각의 유연성도 떨어지고 부드럽게 대화하지도 못합니다.

실재적인 도움을  드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네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할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내것처럼 여기며 상대를 공감할려고 노력하다보면,

항상 생각과 말과 행동속에서 그리고 기도속에서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많은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만,

상처를 입히는 말한마디로 그동안의 쌓은 관계의 공든 탑을 무너트리고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는 사람들을 여러번 보아왔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삶의 현실적인 궁핍보다 정신적인 가치의 결핌이 우리를 더 큰 절망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이기에,

남을 사랑하는 것이 진실로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품고 삶을 경주해야 하는지 늘 고민하게 됩니다.

여러모로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보다 큰 가치인 성경적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흔들림없이 세우는 데 삶의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우리를 이끌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자라는 정체성을 뚜렷히 인식함으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삶속에서 이루어 가는 자들로 홀연히 변화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