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전한 기독교 /c.s.루이스
개인적인 서평)
만약 인간의 이성만을 가지고 하나님과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한다면, 과연 그 내용이 얼마만큼 납득할 만한 것이 될까요?
이 책은 성경이 아닌 일반적인 논증과 비유, 예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기독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 밖의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변증하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에 현재 신앙을 간신히 유지하고는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깊은 확신이 부족하고 지금 소유하고 있는 믿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뚜렷하고 분명한 이야기를 갖지못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과 도움을 주고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의 이성으로 정직하게 질문한다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부정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저자 루이스는, 유능한 문학교수, 판타지소설의 작가, 그리고 교파를 초월해 폭넒게 읽혀지는 기독교작가라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개인적으로도 참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이 책이 쓰여진 지가 60년 쯤 되었지만 이 책의 글들은 지금 우리가 읽기에도 시대적 차이를 크게 못 느끼고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물론 좋은 번역이 한몫 했겠죠.)
세계의 유명한 기독작가들이나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에도 심심찮게 인용되어 우리의 관심을 끌기도 하는데, 그만큼 폭넓은 영향을 주는 작가도 없는 것 같네요. 루이스는 영국성공회에 몸담고 있었고 말년에는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설도 있고 개신교의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 개인적으로 개혁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기도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만 - 사람들의 공격도 받는 것 같지만, 그건 크게 개의치말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이 책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우리가 그 '무엇'을 얻는다면, 또 그 '무엇'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참되고 실제적인 진실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여깁니다.
몇 년전 처음 이 책을 접하고는 많이 놀랐습니다. 일반적인 비유를 자연스럽고 시기적절하게 사용하여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한 글쓰기 능력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한참 읽는 중에 어느 순간 졸고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계속 설명하는 책에 적응이 안되었고 그때까지도 책읽는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필요에 의해 여러번 뒤적이다보니,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는 훈련, 그 내용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습관이라는 유익을 얻었습니다.
루이스는 일반적인 논리와 예와 비유라는 한계를 가지고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해 설명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이성적인 극한의 논리로도 하나님께 가는 길을 안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가 논리적인 증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독자들을 이해시켜서 도달시키려고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물론, '하나님' 그 분입니다. 그리고 그 분과 우리들과의 관계를 솔직하게 보게 함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루이스는 신학자가 아닙니다. 지성적으로 지극히 뛰어난 평신도가 쓴 '일반적인' 신앙서적이므로 신학적으로 완벽한 것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개혁주의의 시야로는 글의 여러 부분에서 걱정과 우려를 할 만한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신화적이며 문학적인 상상력과 주변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통해 형성된 - 정통신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 내용들을 분별력없는 독자들이 잘 걸르지 못하고 전부를 진리로 이해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런 논의에서 어느 책이든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땅위에 완벽하게 하나님을 설명하고 하나님을 정확하게 이론적으로 정립한 책이나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들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에 동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만 볼 뿐이지요.
요즘은 우리교회들이 그동안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많은 신학적인 오류들과 신앙의 잘못된 불순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통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을 지극히 추구하다 보면 마치 나무의 흠있는 모든 가지들을 다 잘라내고 몸통만 남아있는 양상, 건강하려고 한 행동이 오히려 나무의 건강한 대사를 못하게 막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무분별한 것을 막기위해 우리에게는 정말이지 분별력있는 안내자가 꼭 필요하지만, 또한 '냉정한' 개혁의 칼날이 생명의 교류가 되는 모든 통로를 막아버리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있는 것보다 훨씬 큰 분이시며 때가 차면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중심에 변화의 불꽃을 던지실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해할까봐 걱정되지만) 진짜 궁금해서 묻고 싶은 것은, 세상에 완벽한 신학이 나왔습니까?
(잔소리)
# 좋은 설교도 그렇지만 좋은 책들에 담겨진 모든 것을 한번에 다 얻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크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렇습니다. 세월따라 깊어지는 장맛이란 말처럼, 책을 반복해서 읽어보면 예전에 깨닫지 못한 깊고 새로운 내용에 탄복하며 무릎을 칠 때가 있습니다. 똑같은 내용인데도 동일한 마음에 또다른 울림을 줍니다.
# 책은 책일 뿐이고 사람은 사람일 뿐입니다. 좋은 영향과 깨달음을 얻는다고 그 책이나 사람을 절대시 해서는 결코 안되지요. 우리에게 절대적인 기준은 오직 성경이요, 변함없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뿐입니다. 한 때 성경과 설교에 심각하게 무감각해지고 믿음의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의 돌파구로 신앙서적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익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마음 한편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야지'하는 긴장감이 생기더군요. 그런데 지나고보니 결국은 그런 책들을 통해 오히려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 책을 읽느냐라는 정직한 자기물음은 결국 자연스럽게 성경이라는 바다로 흐르고 집중하게 만듭니다.
# 스스로의 '창'(window)으로는, 성경이라는 광활하고 심오한 진리의 바다를 들여다 보기에 한계를 느끼는 분들에게 권합니다. 또 길을 잃었고 더 이상 나아갈 힘을 잃었다고 체념하고 절망했던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네요. 먼저 믿음의 선배들이 쓴 공인된 책들을 읽어보면 어떻겠습니까? 성령님께서 그 분들 각자에게 주셨던 특별한 은혜의 '창'들을 통해 성경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십시오. 그렇게 다양한 렌즈로 볼 때, 성경에 대한 폭넓은 생각과 바른 이해라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작은 책들이 침체되거나 정체된 나의 영적상태를 변화시키는 층분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 또 한가지, 책을 통해 얻는 유익은 반드시 삶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이것이지요. 이성적으로 얻는 지식과 성찰이 소위 머리만 커지게하고 비판만 많아지는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의문과 판단은 지성을 통해 오며 이성을 통해 많은 부분의 답을 얻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는 전적인 능력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적인 성장은 영적인 성숙을 돕는 발판이 되고, 오직 '들을 귀'와 '기도'와 '순종'과 '겸손'을 통해 우리의 영성이 나날이 깊어져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나'로 살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