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으로 행할 일!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후13:5)
교회는 죄를 정죄하는 곳이 아니라 은혜가 넘쳐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그룹을 올바르게 세운다는 목적하에 그 사람의 잘못을 쉽게 지적하고 야단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언젠가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시겠지' 하며 오랜기간 방치하는 듯한 방임도 만만찮게 많더군요.^^)
그런데 그 사람을 진짜로 변화시키는 것은 그런 후에 이어지는 사랑의 용납인 듯 합니다.
그 사람의 실수와 죄까지도 품고서 그 사람을 용납할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용납이란 것이 무조건적이고 무분별하게 용서해주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벌어진 일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그냥 잊어버리고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사자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했든 안구했든, 스스로 잘못임을 시인하든 그렇지 못하든,
다시는 그 실수나 죄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전한 사랑의 손길을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하자는 것이지요.
3주 정도 후면 교회에 이웃초청 천국잔치가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 예수님을 전해야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도'라는 단어의 의미가 참 퇴색된 듯 합니다.
차라리 '예수님을 소개하고 믿으라 권하는 것'으로 풀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듣기 좋고 제대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에수님을 전하고 증거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믿음의 증거요, 최고의 순종이요, 최상의 헌신임을 새삼 깨닫게 합니다.
(이 바뀔 수 없는 사실이 게으른 저에게 굉장한 찔림을 줍니다.--)
또한 믿는 자에게 주어진 공동된 소명이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의무요,
구원받은 자가 기쁨으로 행할 권리입니다.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놀랍고 기쁘고 가슴벅찬 마음에,
이 좋은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저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요.)
예수님을 전할려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오히려 제 자신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그동안 무관심하게 방치해놓은 제 속을 진솔하게 들여다보게 합니다.
나의 믿음이 과연 어디만큼에 서 있는지 점검하게 합니다.
그저 남들하는 데로 따라가는 피상적인 믿음이나 습관적으로 행하는 생기없는 믿음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 돌이켜봅니다.
또 그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고 있는지 뚜렷히 알게 합니다.
우리가 각기 처한 그 상황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는 자로 부르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시간마다에 삶의 소명을 부여하십시다.
이천잔치를 위해 준비하시고 수고하시며 전도하시는 모든 분들께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과 능력이 가득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